원자가 모여 물질을 이루는 과정은 눈사람을 만들 때와 비슷하다. 작은 입자로 시작해 덩어리를 이루는 것처럼, 대부분 물질은 비슷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다. 고체는 원자가 규칙적으로 모여 이뤄진 ‘결정’으로 돼 있다.
작은 결정에 추가로 원자가 계속 붙어 큰 결정으로 자라나는 과정에 대해선 그간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하지만 ‘최초의’ 결정이 어떻게 생성되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많다.
이원철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기계공학과 교수와 박정원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미국 로런스버클리 국립연구소(LBNL)와 함께 세계 최초로 결정핵 생성 과정을 원자 수준에서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고 최근 밝혔다.
연구팀은 금 원자들이 모여 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 결정을 생성하는 순간을 1000분의 1초 단위에서 초고해상도로 촬영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금 나노 결정은 원자들이 무질서하게 뭉친 덩어리 구조와 반듯하게 정렬된 결정 구조 두 상태를 반복적으로 오가면서 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정 내부 핵이 먼저 생성된 뒤 이것이 점점 한 방향으로 커질 것이라는 과학계 통념과 반대되는 연구 성과다. 논문은 세계 3대 학술지인 사이언스에 실렸다.
이 교수와 박 교수는 2012년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2차원 탄소 결정 ‘그래핀’ 위에 이상한 무늬가 갑자기 생기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를 분석한 결과를 2015년 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발표했다. 이때 무늬가 이번 사이언스 논문 연구에 사용된 시편(試片)이다. 금 원자를 방출하는 나노 물질로, 명칭은 ‘AuCN 나노리본’이다.
연구팀은 LBNL이 보유한 세계 최고 성능의 전자현미경으로 이 나노리본 연구를 거듭했다. 문제는 나노리본이 보였다 안 보였다를 반복하는 현상이었다. 연구팀은 수년간 이를 지켜본 결과 ‘결정이 존재하는데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게 아니라, 구조가 무너진 비결정과 결정 상태를 반복해서 오가는 것’이라는 가정을 세웠다. 그리고 이 가정이 맞는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연구팀 관계자는 “결정핵 생성의 새로운 메커니즘을 발견하고 고체 물질이 형성되는 근본 원리를 밝혔다”며 “박막 증착 공정의 초기 상태를 재현하는 등 디스플레이, 반도체 관련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연구 성과”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금 나노입자 구조체에서 ‘2차원 자가 격자배열 메커니즘’을 최초로 규명했다고 8일 밝혔다. 금 나노입자는 고온에서 서로 응집하는 특성이 있다. 이런 특성을 활용해 인체 내 타깃 부위에 약물을 정확히 실어 보내는 전달체 등으로 쓰인다.
연구팀은 유기물-금-유기물 순으로 쌓인 ㎚ 크기 구(球) 모양 구조체를 제작했다. 이 구조체에서 유기물과 금 사이 공간을 4㎚ 수준으로 조절하면 금 나노입자들이 직사각형 형태로 일사불란하게 정렬되는 것을 목격했다.
연구팀 관계자는 “금 나노입자의 규칙성 있는 분포는 구조체 품질을 높이는 데 중요한 요건”이라며 “약물 전달체, 전자부품 회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중성자 소각 산란장치(SANS)를 써서 이번 성과를 냈다.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에서 생산된 중성자를 영하 250도까지 식힌 냉중성자를 쏴서 물질의 구조를 분석하는 장비다. 냉중성자는 1~100㎚ 크기 물질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데 유용하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