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한한 호아킨 두아토 존슨앤드존슨 회장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보다 먼저 찾은 곳이 있다. 직원 수가 70명에 불과한 바이오벤처 티앤알바이오팹이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존슨앤드존슨 시가총액은 585조원에 이른다. 글로벌 제약사 중 1위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1.4배다. 그런 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시총 5000억원짜리 국내 바이오벤처의 경기 판교 연구소를 직접 찾아간 건 파격에 가깝다.
바이오업계에선 이런 행보에 대해 몇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우선 ‘킬러 콘텐츠’의 중요성이다. 티앤알바이오팹은 3차원(3D) 프린터 기술을 활용해 몸에서 분해되는 인공 지지체를 개발하고 있다. 뼈와 뼈 사이를 이어주는 인공 장기다. 두아토 회장은 연초 실적 발표회에서 정형외과 분야 의료기기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디지털 수술과 로봇을 이용한 내시경 검사 등을 언급했다. 업계 관계자는 “티앤알바이오팹이 글로벌 제약·바이오산업의 트렌드를 간파해 일찌감치 사업화에 나선 게 빛을 보게 됐다”고 했다.
두 회사의 협업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국내 바이오업계가 이번 일을 자신감 충전의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우리 기술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국내 바이오벤처는 글로벌 제약사 실무진과의 분(分) 단위 만남도 감지덕지해 하는 게 현실이다. 한 벤처캐피털(VC) 대표는 “국내 제약·바이오업계가 글로벌 시장에서 직접 부딪혀 가며 실패도 하면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며 “이런 각오 없이는 해외에서 성공하기 어렵다”고 했다.
최근 연이어 나온 국내 바이오벤처의 임상 실패와 해외 품목 허가 좌절, 주가 하락 등으로 내려앉은 분위기를 반전시킬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존슨앤드존슨이 전 세계 고위 임원들을 한국으로 불러 글로벌 전략회의를 연 게 2016년이다. 한미약품이 일라이릴리, 베링거인겔하임 등에 대규모 기술수출 성과를 낸 이듬해다. 두아토 회장의 이번 방한도 ‘K바이오’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