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만들고 또 만들어라…천재적 창조물은 그렇게 나왔다

입력 2022-04-08 17:12
수정 2022-04-09 00:23

아이폰 등을 판매하는 애플스토어(사진)는 애플 디자인의 정수다. 높은 층고, 전면 통유리와 널찍한 원목 테이블은 군더더기 없는 애플 제품을 진열하기에 완벽한 공간을 구성한다. ‘단순하고 감각적인 디자인.’ 애플의 디자인 철학을 그대로 재현한 이 공간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스티브 잡스의 머리에서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디자인 과정은 조금도 깔끔하지 않았다. 애플스토어를 설계한 팀 코베는 “매주 새로운 모형을 만들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매장 크기조차 정해져 있지 않았다. 애플의 철학을 담은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수정을 반복했다. 코베는 “제작 과정에서 모든 걸 결정했다. 알기 위해서는 경험하고 느껴봐야 한다”고도 말했다.

《메이커스 랩》은 “훌륭한 창작물은 만들면서 알게 된다”고 강조한다. 저자인 론 M 버크먼은 세계 최고 디자인 학교로 손꼽히는 미국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ACCD)의 총장이다. 연극 연출가이자 영문학 교수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훌륭한 창작물은 어떻게 태어나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가르쳐온 그는 유명 시나리오 작가, 자동차 디자이너, 건축가 등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비결을 파헤친다.

그는 ‘천재적 재능이라는 신화에 속지 말라’고 조언한다. 청력을 잃고도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노래에 따라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낸 베토벤, 대리석 덩어리에서 갑자기 천사가 보여 그걸 그대로 조각한 미켈란젤로…. 천재와 광기, 완성작을 머릿속에 풀어놓고 떠나는 뮤즈에 대한 신화는 매혹적이지만 창작 과정에서 일어나는 창조적 진화를 무시하게 만든다.

제품 디자인, 연극 등 공동작업일 경우 창작 과정 중 일어나는 시행착오와 수정은 더욱 중요하다. 저자는 토론토대 재학 시절 연극부 활동을 예시로 든다.

“나의 진짜 문제는 ‘만들면서 알게 되는’ 공연 과정의 리듬을 제대로 타지 못한 데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준비를 너무 많이 했고, 게다가 잘못된 방식으로 준비했기 때문에 맡은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나는 연기하는 인물에 대해 구상한 뒤 무대에 섰는데, 그 구상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애쓰느라 현장의 호흡을 따라가지 못했다. 나는 정말로 머리로만 연기했고, 그래서 연기력은 형편없었다.”

무턱대고 시작하고 보라는 얘기가 아니다. 책은 “만들면서 알게 되는 과정에 대해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배경지식이 부족하거나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고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즉흥 연주를 즐기는 재즈 피아니스트를 생각해보자. 그가 멜로디 구조, 장조와 단조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피아노 앞에서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재즈 연주자들은 개념이나 인식 없이 연주를 시작하지만 구조, 틀 또는 ‘형식’이라고 부르는 것이 창작의 첫 단계부터 드러난다. 실제로 그런 틀은 연주를 통해서 나타난다.”

대화는 창작물을 구체화하는 도구다. 디자이너들은 하나의 제품을 디자인할 때 동료 디자이너, 엔지니어, 시장, 역사, 문화와 대화를 나눈다. 심지어 디자이너 자신과도 대화한다. 테슬라 모델S를 디자인한 폴 홀츠하우젠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테슬라의 사명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테슬라가 중시하는 효율성이란 무엇일까?”

고객조차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창작 과정 중에 깨닫기도 한다. 디자인 과정에서 수정을 거듭하다 보니 생겨나는 파일명 ‘최종_최최종_진짜 최종2.jpg’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인 셈이다. 저자가 인터뷰한 산업 디자이너 앤디 오그던은 “만들면서 알게 되는 과정은 특정한 사람만 경험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겪게 되는 진실”이라며 “고객들이 디자이너에게 작업을 의뢰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도 만드는 과정에서 조금씩 알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다.

여러 창작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시작이 두려울 때’ ‘슬럼프나 매너리즘에 빠질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한 실제 사례들도 보여준다. 화가 톰 넥텔은 두려워하던 길로 나아가는 방식, 즉 그동안 절대로 살아 있는 존재를 그리지 않다가 자화상을 그리는 방법으로 슬럼프에서 빠져나왔다. 그래픽 저널리스트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웬디 맥노튼은 작업실을 뛰쳐나가 근처 카페로 간 뒤 커피잔을 반복해서 그린다. 새로운 환경에서 단순 작업으로 기본적 훈련을 하는 것이다.

저자는 과정에서 배우고 발전하는 건 창작 외의 영역에도 적용된다고 봤다. 주말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하거나, 인생과 커리어의 분기점에 설 때도 마찬가지다. 삶은 모르는 것투성이다. 우리 모두 이번 생은 처음이고, 자기 인생의 창작자다. 불확실할 때 창조의 가능성이 열리듯이, 신비롭고 낯선 인생은 결국 경험을 통해 완성된다는 저자의 말은 창작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