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봄의 끝자락까지 왔다. 지난번 글을 쓸 때만 해도 나스닥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게 시장의 제일 큰 걱정이었다면, 이제는 뒤를 돌아보기 민망할 정도로 매크로 리스크의 크기는 무시무시해졌다. 그러면 어떻게 할 거냐? 울면서 누워만 있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나 길고, 앞길이 창창하다. 그렇다면? 지난번 기고문에 이어 목청 높여 이야기한다, "노빠꾸!" 성장의 기회를 찾아 더욱 더 깊숙하게 파고들 타이밍이다. 아니, 기업 쇼핑의 장바구니를 들고 돌아다니는 나에게는 꿈과 같은 '바겐 세일'의 계절이 왔다, 야호!!! 마이너스 주식 계좌를 보느라 위경련이 일어나는 판에 무슨 소리냐고?
사모펀드(PEF) 운용 사업을 하면서 여러 기업의 오너 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나는 제일 쉽게 딱 두 부류로 나눠보라고 하면 이렇게 정의한다 ? 팔려는 분 그리고 사려는 분. 요즘 살기가 팍팍해져서인지 몇 년 째 팔려는 분의 비중이 높아지는 게 좋으면서도 걱정되는 부분이지만, 상당히 많은 분들이 또 뭘 사야하는지, 뭐가 시장에 나와있는지 엄청 궁금해 하신다. "김 대표, 가지고 있는거 좀 내놔 봐봐~." 이런 분들, 내가 정말 사랑하는 분들이다.
나도 이런 이야기 들을 때마다 필자가 갖고 있는 회사들을 낼름 내어놓고 팔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든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양아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시장에 나와있는 걸 추천하지도 않는다. 그건 우리말고 할 줄 아는 자문사들이 골프장 디봇만큼 무수히 있다. 그럼 뭘 하랴는 거냐?
일단 기회를 보며 준비해야 한다. 준비없는 실행은 모험이고 만용이다. 필자에게 자주 알바와 숙제를 시키고, 조르시는 분들께 늘 내가 회사를 키우는 여러 방법 중 '강추'하는 방법이 M&A다. 이렇게 뭘 사서 눈코입 붙이고 회사를 만들려는 준비가 된 분들에게는 요즘 같은 시장은 하늘이 내린 기회다. 자, 시장도 준비가 되었고, 나도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진짜 중요한 것으로 간다. 바로 "뭘 어떻게 사야하는지"다. 사례를 들어 보자.
필자가 우연한 기회에 '놀다가' 친해진 A 대표는 유학시절 친구였던 대학동기와 의기투합하여 기술 기반 물류 사업을 창업하고, 성공적으로(현재까지는) 3개국 이상에서 사업을 펼쳐 나가고 있는 똘똘이 창업주다. 30대 초반의 아이비리그 출신이어서인지,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유니콘 기업에서 개고생하면서 중책을 맡은 경험 때문인지, 젊은 나이에도 좋은 경영진들을 모으고 유지하는 인간적인 매력과, 동시에 중요한 사업 의사결정을 신속하지만 진중하게 하는, 정말 내가 사위삼고 싶을 만큼 괜찮은 경영진이기도 했다.
몇 달간 이래저래 친해지면서 오지랖 기제가 또 작동한 나는, 마침 이런 저런 채널로 들어온, 그렇지만 상당히 괜찮아 보이는 볼트온(Bolt-on) 인수 대상 기업들을 몇 개 전달해주었다. 당연히 "형님 고맙습니다"와 "맥주 한 잔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내심 "그러지말고 형님께서 투자 좀 해 주세요"의 삼종 선물세트를 기대하고 있던 나에게, 의외의 반응이 전해져 왔다. "형님, 근데 저는 그냥 opex로만 회사 키우고 싶은데…. 왜 저희가 이런 인수 검토까지 해야하는 거죠?"
엇! 이 무슨 쌍팔년도 반응인가? 내 오지랖이 원망스럽고 짜증이 슬슬 몰려오기 직전, 정신줄을 잡고 도대체 왜 이런 반응이 나오는지 찬찬히 살펴보기로 했다.
회사를 창업하고, 펀딩을 받고, 사람들을 뽑고, 신규 시장에 진출해서 매출을 규모있는 수준까지 만드는 데에는 AAA+ 등급이었던 A대표는, 실상 지난 15년간 일하면서 한 번도 인수합병을 전략의 수단으로 활용한 적이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A대표의 머릿 속에는 "이 돈이면 내가 지을 수 있는 창고가 몇 평이고, 살 수 있는 트럭이 몇 대 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고, 경영권 프리미엄에, 새로운 경영진에, 다소 다른 사업을 가지고 있는 경쟁사를 인수하는 것은 당연히 비싸게 보였을 것이다. 더욱이 A대표의 사업 '근자감'은 하늘을 찌를 때라, "내가 이 업계 최고다"라는 자신감은 "나 말고 나머지는 별로(일 수 있다)"라는 오해 혹은 착각을 하기 쉬운 타이밍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똘똘한 창업자인 A대표는 나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두세 번의 점심과 저녁식사, 그리고 소주 몇 잔 후, A대표는 속내를 마침내 털어놓았다. 창업자의 자신감(삐치려는 나에게는 창업주의 오만함)으로 보였던 그의 반응은, 실상은 M&A를 처음 (검토)해보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이런 기회들을 논의하면서 베테랑 CEO에서 엠린이(M&A 어린이)로 전락하는 데에 대한 어색함의 복합적인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A대표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형님, 뭘 해야 이런 M&A를 성공적으로 했다라고 평가할 수 있죠?"
◆성공적인 M&A를 미리 정의하라
어쩌면 엠린이가 툭 던지는, 지나가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이 질문을 받는 순간 골반뼈에 망치질을 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막연한 대답들은 머리로 생각도 하기 전에 혀 끝에서 줄줄 쏟아져 나왔다. 성장 가속화, 경쟁사를 죽임으로써 얻는 과점 시장의 형성, 싸게 회사를 '줍줍'해서 만들 수 있는 earnings accretive M&A 및 이를 통한 기업가치 향상, 규모있는 R&D 인력의 확보, 규모의 경제를 통한 고정비 축소 및 대량 구매를 통한 변동비율 개선, 경쟁사의 신규 사업 모델 및 시장 정보의 확보, 유사 신규 사업으로의 진출 등등등. 그런데, 이렇게 말이 길수록 측정이 어렵고, 그러다보면 궁극적으로는 의사결정이 모호해진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측정 가능한 하나의 지표로 요약할 수 있어야 성공과 실패를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 둘은 동의하게 되었다.
그럼 A대표의 케이스에는 무엇이 정답이었을까? 몇 주간의 의논 끝에 우리는 "투여자금 (Capital) 대비 기업가치의 향상 수준"을 '성공적 M&A'의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당시 A대표가 운영하고 있던 회사는 회사 자체의 수익성보다는 성장성, 특히 그 중에서도 capacity 및 utilization에 따른 기업가치를 평가받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즉, 동일한 자금을 투여해서 얼마나 빨리 capa를 늘리는지, 그리고 이렇게 늘어난 capa를 얼마나 빨리 돌리는지가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핵심 지표였던 것이다. 상장 혹은 매각까지 한두 번의 펀딩이 더 필요했던 A대표에게는, 다음 라운드에서의 기업 가치 성장률을 극대화해야 본인 지분의 희석화도 최소화하고, 동시에 다가올 상장 혹은 매각에서의 절대적 기업가치 극대화도 가능하다고 나는 판단했다. 결국에는 동일한 자금을 투여해 새로 지어서 그것을 채울 물량을 구하는 시간까지 고려했을 때, 타당 단가는 높아 보여도 실상 돌아가는 회사를 인수한 다음 거기에 물량을 바로 얹어주는 것이 더 빨리, 덜 위험하게 사업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특히, 이렇게 "제일 중요한 지표가 뭐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면서, 인수를 만약 한다면 제일 중요하게 봐야 할 지표들을 같이 정의하게 되었고, 이렇게 정의된 기준들로 한국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경쟁사 혹은 유관 회사들까지 동시에 M&A를 염두해 두고 접근하기 시작하는, 아주 화끈한 실행력을 보여주게 되었다.
◆내가 소화할 수 있는 타깃을 구체적으로 정하라
내가 컨설팅을 할 무렵부터(즉 약 20년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B동생이 있다. 얼굴도 잘 생기고, 몸매도 괜찮고, SKY 중 한 군데 (뭐 S대는 아니다)를 졸업한 똘똘이였다. 그 중에서도 내가 제일 부러워했던 건, 꿀피부에 풍성한 앞머리! 게다가 커리어도 잘 풀려서 스타트업에 조인 후 상장까지 이뤄내고 수백억 대의 주식 부자가 된 훈남 동생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녀석이 맨날 결혼타령은 하면서도 마흔이 넘어가도록 짝을 못찾고, 독거노인 상태로 자꾸 주말에 놀아달라고 괴롭혀서, 나는 이런 저런 소개팅을 좀 시켜줘봤다. 흠, 역시나. 얼마 가지 않아 그 이유를 아주 명쾌히 알게 되었다.
"형, 그 친구는 너무 조용해요."
"형, 저 친구는 일 욕심이 너무 없어요."
"형, 이 친구는 부모님이 너무 빡셀 것 같아요."
"형, 접때 그 친구는 발목이 너무 굵어요."(죽을래?)
"형, 지난 번 그 친구는 맘에 드는데 연락을 안 받아요."
그냥 성격도 좋고, 학벌도 괜찮고, 집안도 화목하고, 얼굴도 이쁘고, 몸매도 좋고, 자기 일도 똘똘하게 챙기는데, 자기 성격도 맞춰주는 B후배의 '이상적인 그녀'는, 이미 10년쯤 전에 다 시집가고 남아있지 않았다!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인생의 파트너가 어떤 모습일지, 명쾌하게 한 줄로 정의할 수 있을 때야말로 결혼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나는 이제 절대 B후배에게 소개팅을 시켜주지 않기로 했다.
기업 M&A도 이와 마찬가지다. 본인 스스로가, 그리고 경영진 혹은 오너들을 준비시키는 것, 특히 성공의 기준을 미리 정해두고 덤비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이렇게 첫 번째 스텝이 완성이 되면, Bolt-on을 할 때 실제로 어떤 회사까지 검토를 해야 하는지, 즉 어망을 어디까지 펼쳐야 하는지가 두번째로 중요한 요소다.
실제로 많은 경우, 특히 전통사업에서 일갈을 이루신, 돈 많은 중견그룹의 사업개발팀 혹은 전략팀에 계시는 임원 분들 혹은 사장님들께서 종종 찾아와 수다를 떨다가 한결같이 하는 말씀들이 있다. (찔린다고 하지 마시고, 위의 표현에 부합하는 분들은 10명 중 9.5명이 나에게 아래와 같은 미션을 공유해주신다 ? 너무 많은 그룹에서 이런 미션을 주셔서 사례를 아예 안 들겠다.)
1. 안정적인 cash flow를 보장하는 사업일 것: 예를 들면, 폐기물 소각, 도시가스.
2. 관리가 편한, 비교적 단순한 사업일 것: 예를 들면, 기술변화가 덜한 제조업, 식품, 물류.
3. '핫'해서 앞으로 20년은 성장할 수 있는 사업일 것: 배터리/2차 전지, 인공지능.
4. 본 사업과 사이클이 다르거나 사이클 자체가 없을 것: 비제조업, 원청 눈치를 안봐도 되는 사업.
5. 얼굴도 잘 생기고 뱃살도 없고 집안도 훌륭하고 학벌도 좋고 성격도 끝내주고 돈도 잘 벌 것.(응?)
죄송한 말씀이지만, 위의 기준이 되는 인수 대상들이 싸게 나와 있으면 당장 내가 오늘 현찰 주고 사버리겠다. 공짜 점심은 없고, 싼 게 비지떡이고, 내 눈에 이뻐보이면 남의 눈에도 이뻐보인다는 인류만물의 원칙은, 당연히 M&A 시장에서도 적용된다.
그럼 어떤 대상들을 Bolt-on의 타깃으로 삼아야 하나? 여러가지 기준이 있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의사 결정 순서를 추천한다.
Step 1: 경영권 인수 여부
제일 우선적으로 경영권을 인수할 지, 아니면 지분 투자를 해 두고 자본 이득, 즉 capital gain을 추구할 지 정해야 한다. 경영권을 인수하고 싶지만 우선은 지분 투자를 해서 발을 좀 담궈놓고 싶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시는데, 이것도 나름 나쁘지 않은 전략이라고 본다. 오히려 인수 후 통합(PMI·Post Merger Integration)의 경험이 없거나, PMI를 잘못해서 말아먹은 경험이 있는 그룹이나 기업들은 지분 투자부터 차근차근 해보라고 나는 추천을 한다.
Step 2: 몰빵 여부 및 총알 크기 정하기
그럼에도 적지 않은 오너분들 그리고 기업가 분들은 '내 것'을 갖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나를 포함해서). 이 경우, 과연 얼마까지 쏠 지, 즉 가용한 재원이 얼마나 되고, 그 중에서 까먹어도 괜찮은 돈과, 까먹으면 절대 안되는 돈을 구분해서 정하고 들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과거 적지않은 그룹들이 cyclical한 한 두 개의 기업 M&A에 몰빵했다가 산업 사이클이 거꾸로 가면서 존망의 위기에 몰린(그리고 상당 부분 그래서 없어진) 경우가 다수 있다. 이를 뒤돌아보면, 대부분 총알을 무리하게 써버린 데서 모든 비극이 시작한 것이다.
그럼 얼마 정도가 좋나? Rule of thumb을 알려드리겠다.
만약 본인이 M&A 바닥에서 껌 좀 씹고 다리 좀 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내가 추천하는 첫번째 Bolt-on M&A의 자본 투여 규모(즉, equity로 들어가는 자금)는 보유 순현금의 50% 혹은, 혹은 연평균 EBITDA의 1배수로 추천한다(물론 내가 투자한 회사들은 이것보다는 더 세게 한다. 참고로 나는 이런 일을 하면서 먹고 살기 때문에 더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채가 관리 가능한 수준에서 자금적 여유가 있을 경우, 최소한 2개의 Bolt-on을 진행한다고 가정하고, 한 개의 인수합병이 시작부터 끝나는 데(즉 PMI까지 완결하는 데)까지 2년 정도 소요가 된다고 보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순현금의 반 정도는 써도 M&A가 완결되는 시점에서 그 현금이 기존 사업을 통해 다시 채워진다.
예를 들어, 보유 자금이 200억이라면 그중 100억원을 equity로 이용해서 투여하고, 인수금융 혹은 PE들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갚아야하는 남의 돈을 추가로 조달하면 기업 가치 기준 200억~300억짜리 회사를 인수할 수 있을 것이고, 이렇게 인수한 기업은 EV/EBITDA기준 10배에, EBITDA를 연평균 20억~30억 정도 벌어주는 회사의 100%를 인수했다고 가정할 때, 연결 기준으로 보면 40억~60억은 2년 내 성장이 없이도 회수된다. 인수 주체의 본사업 역시 돈을 벌고 있을 것이므로 처음 투자한 100억은 쉽게 채워질 것이고, 상장 혹은 인수금융의 리파이낸싱을 통해 부채를 갚아나가면 된다. 이렇게 큰 부담 없이 똘똘한 귀염둥이가 그룹에 붙게 되는 것이다.
혹시라도 이런 첫 번째 인수가 실패로 돌아가도 괜찮다. 나머지 보유 현금 100억원과 모회사의 EBITDA를 활용해서, 당초 첫 번째 시도한 M&A에서 조달한 인수금융 부채의 조달 이자를 충분히 갚아나갈 수 있으며, 시간적 여유를 갖고 인수한 회사를 턴어라운드시키거나, 두번째 M&A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심적, 자금적 여유가 있는 것이다.
EBITDA 1배수 역시 비슷한 논리인데, 통상적으로 정상적인 회사들이 EBITDA 기준 2~2.5배 정도의 부채를 평소에 안고 있다고 가정할 때, 여기서 1~2배 정도 추가로 부채를 조달하는 것은 무리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총 두 번의 투자 기회를 Bolt-on M&A에 시도해 본다고 하면, EBITDA 1배 정도 규모의 부채를 추가로 조달하여, 회사 EBITDA와 외부 조달 부채를 1:1 비율로 섞어 귀염둥이 bolt-on을 시도할 수 있고, 그 이후에도 연결기준 총 부채 수준은 EBITDA의 3배를 넘지 않을 수 있어 이자를 갚고 신규 성장 자금을 투자할 충분한 buffer를 마련할 수 있다.
반대로 내가 '극 비추'하는 건, 있는 가용현금에 부채까지 맥스로 조달하면서(EBITDA 5배 이상) 한 기업에 '몰빵'하는 것이다. 이건 transformational M&A인데, 운명을 바꿀 한 방을 찾는 것이므로 되도록이면 M&A를 많이 해본 PE나 SI를 파트너로 찾던지, 아니면 몇 개의 작은 M&A를 해 본 후 자신감과 실력을 쌓은 후 도전하길 추천한다. 그게 아니면 차라리 일정 수준 증자를 통해 본인의 자본금과 현금 규모를 크게 키운 후 시도하기를 추천한다. 무리하게 추진했던 Bolt-on M&A가 한 번 무너지면, 경영진의 멘탈은 쉽게 무너지고, 본업이 아닌 부업을 수리하느라 본진이 털릴 위험도 크기 때문이다.
자, 그럼 성공의 기준도 정했고, 총알도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 다음은 뭔가? 필자의 핸드폰 번호를 알아낸 다음 연락해서 도와달라고 조르는 것이 정답…은 아니고, 그 전에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다! 그리고 어차피 필자한테 전화해서 졸라도 그 반드시 해야할 일을 내가 요청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내 주변을 뒤져 보는 것! "운명의 상대는 의외로 당신 가까운 데 있다!" 연애 상담이 아니다. 바로 M&A 시장의 이야기다.
◆내 주변에서 먼저 대상을 찾아라
내가 수년 전 어느 제조업체 C사에 투자했을 때 이야기였다. 그 때도 여느 때와 같이, 인수 후 첫 3개월 동안 회사의 구석구석을 뒤지면서 뭐 원가 줄일 건 없나, 뭐 유휴부지 팔아먹을 건 없나, 뭐 신규 증설하거나 공정 개선해서 더 capa 올릴 방법이 없나 이것 저것 먹을거리를 털어보고 있던 중이었다. 그 중 내가 반드시 기본적으로 하는 것 중 하나가 이 회사에 납품하는 모든 회사들의 리스트를 받아서 매출 순위로 상위 30군데를 찍은 다음에 그 회사 하나하나를 뜯어보는 작업이다. 이거, 생각보다 엄청 재미있다.
아니 근데 이게 웬 말인가! 우리 회사에 납품을 하는 회사 중 D사는 우리에게 원재료인 단순 가공품 X를 납품하는 회사인데, 하청업체처럼 보였지만 우리가 투자한 C회사보다 훨씬 훌륭한 마진과 매출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아니 이런 내가 밸류체인 공부를 잘못했나, 섹터를 잘못 찍었나, 이것보다 한 단계 더 올라갔어야 됐나 등등 후회와, 놀람과, 얄미움과 부러움으로 피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러나 노빠꾸! 정신줄을 똑바로 잡고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해야 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차근차근 다시 큰 판에서 보니 우리가 인수한 C사는 비록 최종 고객단에서 특정 세그먼트 1위를 달리고 있는 회사였지만, B2C 사업 특성상 더 큰 카테고리에서는 50여개가 넘는 회사들과 C사가 경쟁을 하고있는, 상대적으로 치열한 시장에서의 수위 업체였다. 반면 우리에게 납품하고 있던 D사는, 가공품을 공급하고 있지만 "산업이 왠지 모르게 후져보인다"는 선입견 때문에 대기업들이 안 들어가 있었고, 국내에서 멀쩡한 메이저 경쟁사라고는 4~5개 업체가 담합 비슷한 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이 D사는 우리가 투자한 C사를 비롯,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공급처 3~4곳을 지난 수 년간 꽉 잡고, 빨대를 꽂아 쪽쪽 빨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파악하자마자 나는 경영진을 다그쳐서 그 회사의 오너 연락처를 받아냈다. 그리고는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주요 고객사의 새로운 주주가 한번 보고싶다는 말에, 마침 궁금하기도 하셨던 D사의 오너분은 흔쾌히 나를 공장에 초대해주었고, 심지어 자기 창업기와, 이 사업의 매력과, 자기가 왜 좋은 파트너인지를 줄줄이 설명하는 좋은 산업 세션을 제공해 주셨다.
덕분에 산업 공부까지 잘 했던 나는 몇 주 더 팀들이랑 공부하고, 몇 달간 그 사장님과 조금 더 친해진 다음에, 어느 날 겁대가리 없이 한 장의 제안서를 내밀었다. "사장님 회사를 저에게 파시죠."
그러나, 그 D사장님은 나름대로의 창업의 재미와 회사의 성장에서 재미를 누리고 계셨고, 우리에게 "감사하지만 꺼지라"는 메시지를 부드럽게 남겨주셨다. 그 메시지를 받는 순간, 그리고 삼고초려를 해도 먹히지 않겠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난 다짐했다. "더 큰 회사를 찾아서 기필코 인수해야지!"
그렇게 회사들을 뒤진 지 어언 일 년이 넘어갈 때쯤, 우리는 당초 인수하려는 D사보다 50% 이상 큰 E사를 기어코 찾게 되었고, 약 6개월간의 협상 끝에 그 회사를 인수하게 되었다. E사는 우리가 인수한 지 4년 만에 5배 이상 성장하는 폭발적인 성과를 보였고, 이제는 top 2로서 전체 산업을 과점하는 훌륭한 회사가 되었다. 또한, 놀랍게도 원래 꼬시려고 노력했었던 그 D사의 오너분은, 나와의 만남을 계기로 매각을 심각하게 고민하시게 되었고, 우리가 엑시트하기 1년 전, 다른 기업으로 회사를 팔면서 수백억의 부를 쌓으시게 되었다. 비록 내가 맨 처음에 인수한 B사는 여전히 많은 경쟁이 시달리고 있었지만, 그 투자를 통해 인사이트를 얻어서 밸류 체인 한 단계를 더 내려가 찾게 된 이 E사는, B사와 멋진 시너지를 내면서 우리에게 훨씬 큰 투자수익도 안겨주게 되었다.
오늘도 말이 길었다. 요약 좀 제발 해 보자.
이 세상에 완벽한 상대는 없고 나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
이런 점을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전문가가 아닌 영역에서 돈을 쓰려면, 삼세판, 아니 최소한 두 번은 할 수 있게 판돈을 아껴야 한다.
인연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자자, 우리 모두 들어가 통장을 열어보자. 잔고를 확인하자. 그리고 나에게 제일 중요한 성공의 지표가 뭔지 확인한 다음, 내 주변에 우리 회사에 납품하는 회사들, 내가 판 물건을 다시 파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앞뒤로 걸쳐져 있는 다른 서비스 제공사들, 그런 저런 회사들의 사장님께 사랑의 문자 메시지를 남겨보자. 우리의 운명의 상대가 우리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끝에는 반드시 필자가 여러분과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