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은 《삼국유사》 첫머리에 ‘고조선(왕검조선)’ 조항을 세 부분으로 구성해 기록했다. 1부와 3부는 역사 서술의 형태고, 2부는 ‘석유환인(또는 석유환국) 호왈 단군왕검’인데, 24개의 신화소를 이용해 치밀하게 논리를 구성했다. 필자는 이 신화에 담긴 논리와 사상을 분석해서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천손의 후손이면서 농경문화를 선택한 집단이라는 자의식을 선언했다. 원조선의 성립과 우리 문화의 근간에 큰 역할을 한 이주민 집단은 서북방 초원에서 왔고, 하늘과 해를 신령스럽게 여겼다. 환웅과 임금인 환인의 ‘桓(환)’은 밝다·크다·하나다·빛나다 등의 뜻을 가졌고, 한국·한글·칸(王) 등과 동일하다. 그가 내린 태백산 꼭대기(太伯山頂) 당나무(神壇樹) 아래의 신시(神市)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가장 성스러운 원형이다. 따라서 이런 천손강림신화는 부여·고구려(백제)·가야·신라·왜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계승됐다.
또 신화 속 웅(熊)은 지금도 곰을 숭배하는 동시베리아와 동북만주의 수렵삼림문화, 토지와 달을 숭배하는 남만주와 한반도의 농경문화라는 두 가지 논리축이 겹쳐 완성된 지모신(地母神)의 상징이다. 때문에 ‘웅’은 동물이 아니라 감·검·금·고마·개마 등과 마찬가지로 무당이나 신, 왕 등을 의미하는 알타이어다. 신라 왕인 이사금과 금성(경주), 고구려의 일본식 명칭인 ‘고마’, 백두산보다 먼저 고구려 때 사용된 개마산·개마대산 등의 명칭, 백제 수도인 곰나루(熊津) 등은 이와 연관이 깊다. 그러니까 ‘단군왕검’은 하늘과 땅의 결합으로 탄생한 신령스러운 존재고, ‘조선’은 하늘의 선택을 받은 집단이라는 선언이다.
둘째, 인간주의와 생명사상을 표방했다. 환웅은 하늘에서부터 천하와 인간세상을 구하는 일에 강력한 의지를 표방했고(數意天下 貪求人世), 그의 관심은 명분과 공담이 아닌 인간 360여사(餘事)였다. 또한 환인이 준 이념은 ‘홍익인간’이었다. 이는 인간이 역사의 주체이며, 만인이 평등하다는 세계관이다. 웅(곰)도 인간이 되기를 지극히 염원하고, 굴 속에서 해를 보지 않은 채로 쑥 한 줌과 마늘 20개(1+20=21)로 버틴 끝에 여자로 변신했다. 이후 다시 나무 아래에서 수태를 지극정성으로 빌었다(이능화, 《조선무속고》). 인간은 고난 끝에야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존재임을 알렸다. 또한 단군왕검은 신이 아닌 인간이었고, 조선은 ‘홍익인간’ 사상으로 신의 나라(神市)를 재현한 인간의 나라였다.
셋째, 조화와 합일을 지향하는 사상과 논리를 표방했다. 보통 토착민과 이주민의 만남, 종교나 문화가 다른 집단 간의 조우는 충돌로 일관되며, 정복과 피정복의 관계로 결정된다. 그래서 그리스·로마·일본 등의 신화는 신들 간의 갈등, 신과 인간 간의 투쟁을 생생하게 표현한 것이다. 반면 단군신화는 문명과 나라의 교체라는 역사적인 결과보다 관계 맺는 과정과 방식, 사상을 더 중시했다. 환웅과 곰은 하늘과 땅, 빛과 어둠, 부와 모, 천손 신앙과 지모신 신앙, 유목문화와 농경문화 등 이원적인 대립 관계를 상징한다. 보통은 과도한 대립과 파국을 낳는 관계인데, 그들은 각종 금기와 결혼 및 출산이라는 민속 의례의 형식을 빌려 극적인 충돌을 피했다. 또한 예비상황과 중간단계를 거쳐 두 집단의 결합을 성사시켰다. 단군왕검의 탄생과 조선의 건국이다.
필자는 이런 단군신화의 기본논리와 사상을 ‘3의 논리’라고 표현해왔다. 역사 발전에서 과정과 단계를, 양보다는 질, 합일을 목표로 상호조화를 이뤄가는 사상의 핵심이다. 실제로 일연은 천부인 3개, 신단수, 삼사, 3·7일 등의 신화소와 3개의 문장 등 ‘3’이라는 숫자와 논리가 많다.
인류의 운명이나 우주의 패러다임을 논하는 ‘우주 담론’ ‘지구 담론’ ‘동아시아 담론’ 등도 중요하지만 민족 간 충돌, 내부의 계급모순, 구성원 간 갈등을 해소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 이런 시대에 합일과 상생을 추구하는 단군신화는 의미가 크다. 더불어 분실했거나 망각한 존재의 근원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을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