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대명사 복어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노린 경기도 가평군 '용소계곡 살인 사건'의 피의자로 지명수배된 이은해(31세)씨와 내연남 조현수(30세)씨가 복어독으로도 남편 윤모(당시 39세)씨를 살해하려 한 혐의가 드러나면서다.
복요리는 한국 대선판도 흔드는 소재다. 지난 2월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혜경씨와 측근이 경기도의 법인카드로 복요리 등을 주문했다는 사적 유용 의혹이 제기됐다.
이 바람에 30년 전의 '초원복국 사건'이 다시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선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모임을 갖고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한 말들이 도청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복요리는 한일 양국과도 유별난 인연이 있다.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의 여러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인들도 오래 전부터 복어를 먹었다. 어류학자인 마쓰우라 게이이치 일본 국립과학박물관 명예연구원은 "약 2만년 전 간토지방의 패총에서도 복어과 어종의 뼈가 발견된다"고 요미우리신문에 말했다.
하지만 1587년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복어식용 금지령을 내리면서 에도시대(1603~1867년) 내내 복어는 금지식품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복어를 먹는 것을 금지한 계기가 임진왜란이었다. 조선 침략의 거점이었던 규슈 시가현에 집결한 병사들이 인근 바닷가의 복어를 먹고 잇따라 복어독에 중독사했기 때문이었다.
통치자가 식용을 금지했어도 서민들은 복어의 맛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에도시대 내내 민가에서는 복어를 몰래 먹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복어 금지령을 푼 인물도 한국과 인연이 깊다. 일본의 초대 총리로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된 이토 히로부미가 300여년 만에 복어를 해금한 인물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하급 관리 시절 머무르던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 여관에서 맛본 복어회에 감동해 복어 식용을 공식적으로 허용했다고 전해진다.
시모노세키는 일본 최대 복어 산지다. 일찍부터 복어를 제대로 조리하면 독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지역이었다. 복어를 허용한 이토 히로부미도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복어 1마리의 내장과 피에는 성인 33명을 죽일 수 있는 맹독이 들어있다. 조리자격을 보유한 전문가만 복어를 조리할 수 있다. 일본 최대 수산시장인 도쿄 도요스시장 한켠에는 복어제독소가 따로 마련돼 있다.
한국의 복요리 자격증은 산업인력공단의 복어조리기능사로 통일됐다. 반면 일본은 지방자치단체별로 복요리 자격증이 제각각이었다.
일본 지자체 가운데 가장 먼저 복요리 자격증 제도를 도입한 곳은 오사카다. 1948년 처음으로 '복어판매영업단속조례'를 제정했다. 지금도 오사카부 조리자격 보유자는 11만명으로 압도적인 1위다. 도쿄는 2만1675명, 복어 주산지인 야마구치는 7208명이다.
복요리 자격증 보유자의 숫자는 지자체마다 다른 취득 방식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오사카, 홋카이도, 효고 등 16개 지역은 강습회 수강만으로 자격을 준다. 반면 도쿄는 조리면허를 가지고 2년 이상 실무경험이 있는 사람만 자격증을 딸 수 있다. 시험 내용도 '학과', '실기', '복어 감별' 등으로 엄격하다.
복어 감별 과목이 따로 있는 것은 복어의 종류에 따라 유독성이 다르고 내장을 먹을 수 있는 종과 없는 종이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별로 복요리 자격증이 중구난방이라는 지적이 높아지자 후생노동성은 복요리 자격증의 '일본 통일'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학과와 실기로 구성된 인정기준안을 만들어 일본 전역에 확대할 계획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