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채무 규모가 지난달 중순께 10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 당초 정부 예상보다 1년가량 빨리 '나랏빚 1000조원' 시대가 열렸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이어져온 문재인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와 코로나19 이후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등을 위해 반복된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회 예산정책처(예정처)가 집계하는 '국가채무시계'에 따르면 7일 오전 11시 국가채무는 1005조4066억원으로 추산됐다. 국가채무는 중앙정부채무와 지방정부의 순채무를 합한 나랏빚을 의미한다. 국가채무시계는 예정처가 정부의 채무 규모를 관리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2013년부터 공개하고 있는 실시간 나랏빚 현황판이다.
예정처는 국가채무가 1초마다 약 302만원씩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루에 약 2609억2800만원씩 국가채무가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토대로 역산하면 지난 3월 17일께 국가채무시계가 1000조원을 돌파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부는 2019년 8월 국가재정운용계획(2019~2023)을 발표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2023년은 돼야 한국의 국가채무 규모가 10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했다. 동시에 올해 말 국가채무 규모는 970조6000억원으로 예측했다.
정부의 예상보다 1년이나 앞서 나랏빚이 1000조원을 넘긴 것은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하지 하고 빚을 내 재정을 푸는 데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총지출 규모는 결산 기준 2017년 406조6000억원에서 지난해 600조9000억원으로 4년 사이 47.8% 증가했다. 박근혜 대통령 재임 시기인 2013년부터 2017년까지는 총지출 규모가 4년 사이 337조7000억원에서 406조6000억원으로 20.4%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의 총지출 규모 증가 속도가 박근혜 정부의 두 배가 넘는 셈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가 터지기 전부터 매년 추경을 편성하며 과거 정부에 비해 확장적인 재정 정책을 펼쳤다. 2017년엔 노인일자리와 같은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취임 직후 11조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했다. 2018년엔 청년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교통비 지원과 같은 현금성 지원책을 중심으로 3조8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짰다.
코로나19 확산 이후로는 재정건전성이 보다 가파른 속도로 악화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17년 36%에서 2019년 37.6%로 2년 사이 1.6%포인트 늘었는데,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2020년엔 43.8%로 치솟았다. 지난해 국가채무비율은 47%까지 상승했고 올해엔 50.1%까지 오를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엔 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정부가 국채 발행을 최소화하기 위한 지출 구조조정 등의 노력엔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2020년 국민 '위로' 성격의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과 같이 보편적 현금성 지원 정책은 코로나19 극복엔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재정건전성만 악화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재정 건전성은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윤 당선인의 공약에 따라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50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정부와 채권시장 안팎에서는 50조원의 추경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인수위 역시 대규모 추경 편성으로 나타날 수 있는 물가 상승 등의 부작용을 고려해 추경 규모와 재원 마련 방법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고 있고 금리도 올라가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돈이 풀리게 되면 금리 인상 효과가 사라져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더 올릴 수밖에 없게 된다"며 "가계부채가 많은 사람들의 이자 부담이 커지게 되기 때문에 이런 악순환을 최소화하면서도 (소상공인에 대한) 손실 보상을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