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첫 총리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후속 장관 인선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윤 당선인은 부처별로 2~3명으로 압축한 후보 리스트를 놓고 막바지 인선 작업을 진행 중이며, 이번주부터 그 결과를 단계적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현재 물망에 오른 내각 후보 인사들은 대부분 이명박 정부(일부는 박근혜 정부) 관료 출신이거나, 현직 대학교수들이다. 능력 있는 실무형 전문가를 중용하겠다는 당선인의 인사 방침에 대체로 부합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거론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그 인물이 그 인물 아니냐’는 세평이 나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민간 부문의 혁신과 창의성을 정부 조직에 이식할 수 있는 전문가나 국제 경쟁 흐름과 미래 신기술에 밝은 기업인 출신은 찾아볼 수 없다. 민간 부문의 인재 수혈이 막히다 보니 이름과 얼굴이 익숙한 인사들이 또다시 공직에 들어가는 ‘회전문’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기회에 민간의 공직 진출을 가로막고 있는 제도적 걸림돌을 제거하는 논의를 본격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우선 국회의 인사청문회다. 공직 제의를 받은 민간인들이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관문이다. 인사청문회는 장관의 정책 수행 능력을 검증하는 자리라기보다 개인 신상털이장으로 변질한 지 오래다. 도덕성 검증을 앞세워 후보자의 아들, 부인의 병명이나 학점 등 사생활까지 낱낱이 들춰내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기업인이 나름대로 훌륭하게 가꿔온 인생에 오점을 남길 수도 있는 모험을 감수하려 하겠는가. 인사청문회 제도는 올해로 도입 21년째다. 이제 그 성격과 역할을 재정립할 때가 됐다. 미국처럼 1~2개월에 걸쳐 사정기관을 통해 도덕성을 검증한 뒤, 청문회에선 도덕성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정책 수행 능력 검증에만 집중하는 이원화 시스템 등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고위공직자 주식 백지신탁제도도 어느 정도 손질이 필요하다. 공직자윤리법상 3000만원 이상 주식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2개월 안에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해 처분해야 하는 제도다. 역대 정권마다 기업인을 요직에 앉히려던 대통령의 의지를 좌절시켰다. 박근혜 정부 때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의 중소기업청장 임명이 무산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문재인 정부도 신설 부서인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 기업인을 앉히기 위해 백방으로 타진했지만, 결국 백지신탁제도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무려 넉 달이나 장관 자리를 비워두다가 결국 교수 출신을 앉히고 말았다. 기업인에게 평생을 걸쳐 일군 기업과 장관 자리를 맞바꾸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주식을 팔지 않고 보관 신탁을 하되, 신탁기간 중에 평균을 초과하는 상승분은 사회에 환원하는 식의 제도 보완을 고려할 때다.
4급 이상 공직자의 퇴임 후 3년간 유관업종 재취업을 금지하는 제도도 재고해봐야 한다. 이번 장관 인선 과정에서도 재취업 금지 규정이 그렇지 않아도 협소한 인재풀을 더욱 좁게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3년 재취업 금지 규정이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은 비단 장관직뿐이 아니다. ‘자본시장 대통령’으로 불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자리가 과거 1년 정도 공석이 된 이유도 이 규정에 부담을 느낀 전문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업인과 민간 전문가들이 공직에 진출해 시장에서 쌓은 혁신 역량을 국가를 위해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국제적인 흐름이다. 오래전부터 공직 개방이 활발한 미국은 차치하고, 대만의 사례를 한번 보자. 대만 디지털 장관 탕펑(오드리 탕)은 화이트 해커 출신이자 트랜스젠더다. 그는 코로나 사태 초기 마스크 대란 해법까지 내놔 국민들의 큰 호응을 얻은 인물이다. 우리 국회 기준으로 그가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었을까. 박근혜 정부 시절 첫 해외동포 출신 장관 후보자였던 김종훈 씨를 결국 이중 국적과 CIA 근무, 처가의 부적절한 임대 사업 등을 이유로 내쫓은 나라에서 말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기업인의 공직 진출을 막아 놓으니 노동운동가나 시민운동가들이 그 자리를 꿰차 진영 논리를 앞세워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는 것 아닌가. 이제 국정의 방향은 안정도 중요하지만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혁신의 힘은 민간에서 나온다. 우리는 성인군자가 아니라 능력 있고 깨어 있는 공직자를 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