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우크라의 제노사이드

입력 2022-04-04 17:32
수정 2022-04-05 00:18
2016년 스페인 그라나다대학의 진화생태학자들은 동족을 살해하는 인간의 폭력성이 계통유전학적으로 어디서 기원했는지 연구한 결과를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었다. 이에 따르면 연구팀이 조사한 1024종의 포유류 가운데 동족 살해 습성이 있는 종은 40% 가까이 됐고, 포유류의 평균적인 동족 살해율은 0.3%였다. 이에 비해 현생 인류가 속한 호모속(屬)의 동족 살해율은 2.0%로 포유류 평균의 6배에 달했다. 인간은 이처럼 계통유전학적으로 물려받은 치명적 폭력성을 문화로 통제해왔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사회·정치적 제도와 규범 및 문화의 발달로 인간은 상호 간의 폭력행위를 규제해왔다. 하지만 그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 전쟁 상황이다. 상호 교전으로 인한 죽음 외에 수많은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살해)가 자행돼 왔다. 10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물론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 중·일전쟁 때의 난징대학살, 미얀마의 로힝야족 학살까지 일일이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외곽의 소도시 부차에서 러시아군이 집단학살한 것으로 보이는 시신들이 잇달아 발견되면서 충격을 안기고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도시를 한 달 넘게 점령한 러시아군이 물러간 부차의 거리 곳곳에서 민간인 복장의 시신들이 잇달아 발견됐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부차를 비롯해 키이우 인근 지역에서 민간인 시신 410구를 수습했다고 밝히고 관련 사진과 영상을 공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민 전체를 말살하려는 제노사이드를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방 언론을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가 연출한 것”이라는 러시아의 부인에도 국제사회의 규탄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규탄과 격분, 응징을 주장하는 각국 지도자의 메시지가 줄을 잇고, 유엔 차원의 진상 조사도 추진될 모양이다. 첨단 문명을 구가하는 현대 인류가 또다시 목도해야 하는 집단학살의 참혹함이라니….

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제64회 그래미상 시상식을 통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한 호소가 처연하다. “음악과 상반되는 것은 무엇인가. 파괴된 도시와 죽은 사람들의 침묵이다. 죽음과 같은 정적을 당신들의 노래로 채워달라.”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