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기업·정부 등 국내 3대 경제 주체가 짊어진 부채의 규모가 지난해 처음으로 50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부동산 가격 급등에 따른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급증, 코로나19 대처를 위한 정부의 확장 재정 등이 맞물린 결과다.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속도로 부채가 불어나면 경제 주체 모두가 빚의 부담에 짓눌려 경제 활력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4일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매크로 레버리지(가계·기업·정부의 부채 총액)는 5188조5000억원으로 2020년 4726조2000억원 대비 462조3000억원(9.8%) 증가했다. 이 기간 가계부채(가계신용)는 1726조1000억원에서 1862조1000억원으로 7.8% 늘었고, 기업신용은 2153조5000억원에서 2361조1000억원으로 9.6% 불어났다. 정부의 국가채무(중앙+지방정부)는 846조6000억원에서 965조3000억원(2차 추경 기준)으로 14% 늘었다.
국가 전체적인 빚의 규모가 빠르게 커지면서 국민 1인당 짊어져야 하는 총 부채액은 2020년 9118만원에서 지난해 1억27만원으로 증가했다. 빚의 규모는 늘어나는 가운데 한국 인구가 같은 기간 5183만6000명에서 5174만5000명으로 감소한 영향이다. 국민 1인당 총 부채액이 1억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 가계부채와 정부 부채가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나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순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7%로 관련 통계를 집계하는 31개 OECD 회원국 가운데 여섯 번째로 높았다. 한국의 순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던 2008년까지만 해도 138.5%로 미국(137.5%)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OECD 회원국 중에선 13위였다. 하지만 미국의 이 비율이 2020년까지 101.1%로 36.4%포인트 낮아지는 동안 한국은 62.2%포인트 상승했다.
정부 부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재정점검(Fiscal Monitor)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일반정부(정부+비영리공공기관) 부채 비율이 2020년 47.9%에서 2026년 66.7%로 18.8%포인트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같은 기간 OECD 회원국 가운데 일반정부 부채 비율이 15%포인트 넘도록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는 체코(15.9%)와 한국 외엔 없었다.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른 '빚'을 줄이기 위해선 차기 정부의 적극적인 부채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의 첫 총리로 지명받은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역시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가계부채와 재정건전성이 악화화고 있는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매크로 레버리지(가계·기업·정부의 부채 총액) 증가세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현 정부가 취약계층 지원을 명분으로 지난달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 및 원리금 상환유예 조치를 재차 연장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당선인 측 모두 치밀한 경제적 분석 없이 정치적인 이유로 만기연장 및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를 연장하기로 결정했다"며 "취약계층에 대한 빚 상환을 미뤄줄수록 디폴트 위험과 향후 국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수위가 5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강행하고 있는 점도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인수위 측은 추경을 편성하더라도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최대한 많은 재원을 마련한다고 주장하지만, 관가와 채권시장 안팎에서는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국고채 금리는 대통령 선거 이후 가파르게 뛰고 있다.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지난달 10일 2.726%에서 이날 오전 3.120%로 0.394%포인트 뛰었다.
김상훈 KB증권 연구원은 "윤석열 당선인이 이재명 후보보다 상대적으로 재정 건전성을 중요하게 여길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꺾이면서 국고채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국고채 금리 상승이 시중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결국 취약계층의 피해가 커진다고 지적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