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 부작용을 해결하는 ‘게임 체인저’를 내놓겠다던 엔지켐생명과학의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신약 후보물질의 호중구감소증 대상 임상 2상 시험이 중단되면서다. 세균 등과 싸워야 할 면역계의 호중구가 줄어드는 이 질환은 이 회사의 주력 후보물질 ‘EC-18’을 활용해 개발하던 분야에서 시장 규모가 가장 컸다.
4일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엔지켐생명과학은 지난 1일 장 마감 후 ‘EC-18’의 호중구감소증 임상 2상 시험을 자진해서 중단한다고 공시했다. EC-18은 2016년 12월 항암 치료를 받는 유방암 환자의 호중구감소증 치료를 위해 국내 임상 2상 승인을 받았다. 2020년 임상 계획은 유방암 환자에서 전이성 췌장암 환자로 바뀌었다. 당초 지난해 12월 췌장암 환자 62명 등 124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끝낼 계획이었다. 업체 측은 “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하면서 임상 환자를 모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호중구감소증은 백혈구의 한 종류인 호중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질환이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호중구감소증이 생기면 감염병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엔지켐생명과학은 2027년 호중구감소증 치료제 시장이 186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평가해왔다.
‘게임 체인저’ 기대작이었던 호중구감소증 임상이 좌초되면서 EC-18 시장성이 타격을 입게 됐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치료제 등으로도 개발 중이지만 아직 초기 단계다.
신약 개발을 이끌던 임원들의 줄퇴사도 이어졌다. 신약 연구개발(R&D) 임상 총괄인 김희수 부사장과 김지완 광교연구소장은 지난해 말 회사를 떠났다. 업체 측은 “코로나19 유행이 진정되면 신약 임상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엔지켐생명과학 지분 19.24%를 보유해 최대주주에 오른 KB증권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엔지켐생명과학은 지난달 말 정기주총에서 손기영 대표 등의 퇴직금을 5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대폭 올렸다.
지난달 유상증자 실권주를 대거 떠안은 KB증권의 지분율은 손 대표(6.94%)보다 높지만 황금낙하산 조항 탓에 경영권 매각 목적의 인수합병(M&A) 등도 사실상 어려워졌다. 이날 엔지켐생명과학 주가는 2만6400원으로 7.69% 하락했다.
이지현/한재영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