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동구에서 배달기사 일을 하는 박모 씨는 동료들과 지난달 배달 건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깜짝 놀랐다. 기사마다 배달 건 수가 너무 많이 차이났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20건 넘는 배달을 성공한 동료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5건밖에 처리하지 못한 기사도 있었다. 이 씨는 “알고보니 어떤 기사는 (배달) 콜이 적게 뜨거나 늦게 울려서 배달 처리량이 훨씬 적었다”고 설명했다. “배달기사도 사장과 친분으로 신분 나뉘어”배달 업계에서 특정 배달기사에게 배달을 몰아주는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배달대행업체의 사무실에서 배달 기사에게 배달 콜을 줄 때 특정 기사에게는 1분 정도 먼저 콜을 주거나, 지리적으로 멀고 교통이 불편한 지역의 배달 건인 이른바 ‘유배 콜’을 다른 기사에게 몰아주는 방식이다. 콜 배당 기본 알고리즘이 있지만 배달사무소 재량으로 재배분이 가능하다. 배달기사의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의 우람 정책국장은 “배달 건 분배 과정에서 특정인에게 몰아주거나 차별을 한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배달 건수 하나하나가 소득으로 직결되는 기사들에게 이는 무시할 수 없는 차별이다. 이 때문에 기사들 사이에선 신분이 나뉜다는 말까지 나온다. 박 씨는 “친한 동료가 최근 이 문제를 지적했다가 '6두품으로 강등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표현했다.
일감 몰아주기 방식으로 기사들 사이에 차별이 발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배달대행업체 사무소 사장 또는 직원과 친하다는 이유로 더 많은 콜을 할당받는가 하면, 전업 기사라는 이유로 파트타임 기사보다 더 가까운 지역의 배달 주문을 맡는 혜택을 누리기도 한다. 서울 관악구에서 6년째 배달기사로 일하는 이모 씨(44)는 “배달 실력이 좋은 사람에게 더 많이 콜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사적인 인연으로 혜택을 받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이 씨는 “서울의 경우 배달대행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6두품’이 된 기사가 다른 곳으로 옮기면 그만이지만, 수도권 외곽지역이나 지방의 경우 업체 수가 적어 문제”라고 덧붙였다. 법적 문제도 제기될 수 있어그러나 배달대행업체 사무소를 운영하는 사장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가뜩이나 배달기사 인력 부족에 허덕이는 상황인데 이들을 차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부산 연제구에서 배달대행업체를 운영하는 최성민 씨는 “과거 일부 그런 사례가 있었을지 몰라도, 최근 2~3년 새 기사들 사이의 차별은 완전히 사라졌다”며 “만일 지금도 그런 행태를 보이는 업체가 있다면 기사들이 반발하거나 이직하면서 곧바로 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들의 불만이 지나치다는 말도 나온다. 배달 콜을 받을 때 어디부터가 ‘유배’냐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배달 기사들이 출입이 어렵거나 와이파이가 잘 터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하는 아파트 고층 배달을 꺼린다”며 “요즘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거기서 주문하는데, 그건 다 유배인가”라고 되물었다. 그에 따르면 평일 하루 평균 2000여 건의 배달 주문 중 70% 가량이 아파트에서 들어온 주문이다.
의혹이 사실일 경우엔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중규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총괄과장은 “누구한테 어떤 기준으로 일감을 몰아줬는지가 중요하다”며 “차별이 있다면 그 동기와 기준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품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42)는 “배달 기사로 채용될 당시 배달 건수 분배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명확히 설명했는지 역시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