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 기반의 대량생산에서 소프트웨어(SW) 기반의 개인화 서비스로 산업이 전환하면서 채널, 데이터, 전통적 업(業)의 경계도 무너지고 글로벌 경쟁도 심해졌다. 소비자는 너무 빠르게 변한다. 새로운 시장에서 과거 30년이 걸린 성장을 2~3년 내 급속도로 도달하는 유니콘 기업이 등장한다. 그만큼 기회도 많지만 위기도 많다.
이렇게 급변하는 환경에서 ‘애자일’이라는 단어는 모든 회사의 화두다. 요즘 스타트업에서는 폭발적 성장을 목표로,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 그리고 포기하는 ‘전격전’ 같은 전략을 선택한다.
필자가 겪은 애자일은 태생적이고 본능적인 것이었다. 스타트업은 다 갖추고 일할 수 없다. 몇 달 남지 않은 자본금, 가설이 틀리거나 투자유치에 실패하면 존속이 어려운 상황, 그런 상황에서 누가 재무 인사 마케팅 등 모든 것을 신경 쓸 수 있겠는가. 전지전능한 고객에게 묻고, 덜 중요한 것을 빼고 업의 본질과 성공에만 집중하는 제품만 남겨야 한다. 그리고 그 제품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이 생겨나며 성장을 이끈다.
성장 과정에서 고객에게만 온전히 집중하는 스타트업 정신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다양한 기능이 생기고 분화하면서 개인 역량에 의존하지 않고 혁신을 확장하는 도구와 인프라가 더욱 중요해지는데, 이를 구축하고 실행하는 문화적 변화를 겪는 과정에서 목적과 수단이 전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데이터 인프라를 보자. 고객을 이해하고 필요한 것(needs)과 원하는 것(wants)을 찾기 위해 데이터가 반드시 근거가 돼야 한다. 하지만 “데이터가 그렇다”는 리포트 앞에서 제품의 본질과 고객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 사라지는 경우를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고객이 아니라 데이터가 법이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애자일 방법론의 민첩한 실행들을 학습하고 묵직한 감동을 주는 제품을 만드는 것까지 집중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무조건 빠르게 하는 독단에 빠진다.
필자는 스타트업 대표로서 스타트업이 태어나면서부터 터득한 성공 방정식을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전달하고 체득하게 할지, 칸막이 없고 수평적인 문화에 쏟아지는 다양한 욕구와 견해를 어떻게 고객을 중심으로 모으고 풀지 항상 고민한다. 회사와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가치관과 훈련되고 습관화한 문화의 힘에서 늘 답을 찾는다. 선한 영향력, 투명하면서 일을 하면 끝을 보는 오너십, 그리고 동료가 맡은 바 역할을 결국 해낼 것으로 믿는 신뢰만 있다면 궁극적으로 고객 가치에 집중할 수 있다. 추상적이지만 요즘 시대에 더 어울리는 문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