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위원 이름 알려달라는 징계 대상자...공개해도 될까?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입력 2022-04-03 09:35
수정 2022-04-03 09:36

인사담당자들이 회사에서 징계절차를 진행하다 보면 만만찮은 직원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징계의 하자를 주장하며 회사의 징계 진행 과정 하나하나에 흠집이 없는지를 샅샅이 찾는 징계 대상자도 종종 만나게 된다. 정당한 징계지만 절차적 문제를 이유로 징계가 무효화 되면, 회사가 입는 피해가 적지 않다. 이 경우 만연하게 대처한 인사담당자는 회사나 피징계자로부터 꼬투리를 잡힐 가능성도 높다.

난제 중 하나는 징계대상자에게 어느 정도까지 징계 관련 정보를 오픈해야 하느냐다. 특히 성 관련 비위나, 피해자가 있는 비위의 경우라던지, 징계를 판단하는 심사위원도 자신이 공개되는 것을 곤란해 하는 경우에 이런 문제가 불거진다. ◆법원 "징계위원 이름과 직책은 사생활 아냐"징계를 받은 피징계자는 징계를 내린 심사위원의 직책과 이름을 알 권리가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징계위원이 누구인지 알아야 피징계 대상자가 징계위원에 대한 기피신청 등을 하는 등 방어를 할 수 있다는 이유다.

대구지방법원 제2행정부(재판장 박광우)는 지난달 31일 육군3사관학교 행정보급관 A가 육군3사관학교장을 상대로 청구한 정보 비공개결정취소 소송에서 이 같이 판단하고 원고 A의 손을 들어줬다.

A는 지난해 5월17일 품위유지의무위반(언어폭력, 영내폭행), 성실의무위반 등을 이유로 근신 10일의 징계처분을 받았다.

A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투기 위해 국방부장관에게 "징계기록 전체 목록과 전체 서류 및 징계위원의 성명과 직책, 계급을 공개하라"는 청구를 했다. 이를 이첩 받은 육군3사관학교 측은 일부 징계기록을 공개하면서도 △징계위원회 위원의 성명 및 직책 △참고인의 진술조서 중 참고인의 성명 등 신상에 관한 사항 등을 비공개했다.

비공개하는 이유(근거)로는 정보공개법 9조 1항 6호를 들었다. 해당 조항은 "성명·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로서 공개될 경우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를 비공개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비공개 결정에 대해 A가 육군3사관학교 측의 비공개 처분이 잘못됐다며 취소해 달라는 내용의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법원은 "육군3사관학교 측은 해당 정보의 공개를 거부할 수 없다"며 A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징계위원의 성명 및 직책은 개인의 내밀한 비밀 등이 알려지는 것과 달라, 공개된다고 인격적·정신적 내면생활에 지장이 초래되거나 자유로운 사생활이 침해될 위험이 없다"며 "징계위원도 공무원으로서 직무수행 일환으로 참석한 것이므로, 직책과 성명은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군인사법도 심의대상자(징계대상자)는 자신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징계위원을 기피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A로서도 (기피 신청하려면) 관여한 위원의 성명 및 직책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징계 대상자의 방어권 확보 중요한편 광주지법 단독 황영희 판사는 지난해 12월 여성 동료직원 3명에게 성희롱 및 폭행을 저지른 이유로 6개월 감봉처분을 받은 한국전력공사 대리 직원 B가 한전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B는 신고죄명, 본인과 관련자 조사자료, 조사 결과서, 인사위원회 회의록을 공개해달라고 청구했지만, 한전 측은 본인·관련자 조사자료와 조사 결과서는 피해 직원들의 진술이 들어가 있어 공개할 경우 누구인지 확인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정보공개법상 비공개 대상 정보'라며 거부했다. 이에 B가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황 판사는 B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B가 실질적으로 방어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관련 정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한전은 피해자들의 진술 내용이 공개될 경우 피해자가 특정될 수 있다고 주장하나, 한전이 B를 조사할 당시 이미 피해자들의 실명을 언급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설령 정보 공개로 진술자들이 다소의 불편을 겪게 될 수 있다 하더라도, 진술자들을 보호 이익보다는 정보공개로 구제되는 B의 이익이 더 큰 점 등을 고려하면 (B가 요구한 정보가) 비공개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법원의 판결은 이렇게 나왔지만, 인사담당자들의 고민은 속 시원하게 해소되지 않는다. 특정 정보를 함부로 공개할 경우, 특히 성 관련 비위 사건에서는 회사의 2차 가해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이럴 때일수록 적극적인 개입 보다는 객관적이고 냉정한 자세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징계위원 명단을 공개 요청하는 것은 자신의 비위행위와 관련된 자가 징계위원으로 참석해 자기에게 불리한 판단한 것은 아닌가 확인하기 위한 것이므로, 인사담당자는 선제적으로 비위행위와 관련된 자를 징계위원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절차상 하자가 있다면 징계처분이 무효가 될 수 있다"며 "인사담당자가 주로 많이 하는 실수로는 본사 인사위원회로 진행해야 하는데 공장 인사위원회로 진행하거나, 임원으로 위원회를 구성해야 하는데 임원이 아닌 자가 포함된 경우 등이므로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법원은 피징계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 정보는 공개해줘야 한다고 보는 견해"라며 "인사담당자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객관적으로 정보 공개 범위를 정해야지, 어느 한쪽의 입장에서 공개나 비공개할 경우 회사가 휘말리게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