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협상 뒤통수 친 러…美 "軍철수 아닌 재배치"

입력 2022-03-31 17:56
수정 2022-04-01 01:17
미국 국방부가 3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주변에 있던 러시아군의 이동을 철수가 아니라 재배치로 평가했다. 전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평화협상에서 휴전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하루 만에 키이우 일대에서 양측의 교전이 벌어지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세는 더 거세지고 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키이우 북쪽과 북서쪽에서 공격한 러시아 군대가 재배치되고 있으며 키이우 인근 체르니히우와 수미를 공격하던 러시아군 일부는 벨라루스로 재배치됐다”고 말했다. 커비 대변인은 “러시아가 긴장 완화의 진정성을 보여주려면 군대를 본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며 “러시아군은 여전히 공습과 포격으로 키이우를 공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AFP통신에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노빌 원전에 있던 러시아 군대 일부가 벨라루스로 이동하고 있다”며 “그들이 모두 사라졌다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벨라루스는 친러시아 국가로 러시아가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할 때 공격 통로로 이용한 나라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병력을 늘리고 있다. 커비 대변인은 “러시아가 민간 용병조직 와그너그룹 1000명가량을 돈바스에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와그너그룹은 해외 분쟁 지역에서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위해 은밀히 용병을 동원하는 기업이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2014년에도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을 통해 “우리는 어떤 아름다운 문구 하나도 믿지 않는다”며 “우리 영토 1m를 위해서라도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아주 유망하거나 돌파구가 마련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1일 비우호국의 경우 4월 1일부터 러시아 가스 구매 대금을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로 결제하도록 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앞으로 러시아 천연가스를 구매하려면 국영가스기업 가스프롬의 금융 자회사인 가스프롬방크에 가스 대금 결제를 위한 루블화 계좌를 개설해야 한다”며 “루블화 결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존 가스 공급 계약은 중단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주요 7개국(G7) 에너지 장관들은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요구가 명백한 계약 위반이라며 만장일치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유럽은 천연가스 수입의 40%가량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