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레이,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장치(MRI) 같은 의료영상에 종양 및 병변의 위치와 크기 등의 의료 데이터 분석은 과거 영상 진단 전문의가 직접 했다. 환자에 따라서는 3~4시간 넘게 걸렸다. 의료진이 암세포 등을 찾아낸 뒤 표시를 위해 경계선을 나눠 색칠하는 등 오랜 시간 수작업을 했다. 정확도도 떨어지기 일쑤였다. 인공지능(AI) 의료업체 인그래디언트가 이런 불편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31일 서울 반포동 본사에서 만난 이준호 대표(사진)는 “메디라벨을 활용하면 클릭 한 번만으로 비슷한 데이터가 반자동으로 선택돼 의료영상 분류 작업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고 했다.
의료영상 데이터 분류 솔루션인 메디라벨은 딥러닝 AI 기술을 적용해 기존보다 데이터 가공 속도는 열 배, 정확도는 두 배 이상 높였다. 최근 마우스로 특정 영역에 바운딩 박스(네모 상자로 객체 표시)를 치면 문제가 되는 부위와 결절을 찾아내 분류 표시를 해 주는 기능을 추가했다. 이 대표는 “뼈와 장기를 비롯해 뇌경색과 염증, 종양, 혈관 등 고난도 부위에서도 높은 정확도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혁신적인 접근이 가능한 것은 차별화한 인터랙티브 세그멘테이션(상호 세분화) 기술 덕분이다. 의료진이나 연구자의 클릭 위치와 순서 등 패턴을 분석해 빅데이터를 축적한 뒤 다음 행동을 예측하는 방식이다. 이 대표는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알고리즘 성능이 개선된다”면서도 “의료진마다 데이터의 판독 소견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진단을 내리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메디라벨은 신경외과, 안과, 흉부외과, 치과 등 다양한 진료과에서 활용 가능하다. 영상분석 전문의가 없는 병원에서도 수요가 높다. 서울아산병원과 신촌세브란스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 9개 대형 병원에서 채택했으며 범부처 의료기기 표준화 사업으로도 선정됐다.
반도체의 불량품 검출 작업에도 쓰인다. 삼성전기에 솔루션을 납품했다. 피아노를 전공한 이 대표는 미국 유학 시절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의료 데이터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후 전공을 의료공학으로 바꾼 뒤 본격적인 개발에 뛰어들었고 2020년 인그래디언트를 창업했다.
최근 요즈마그룹 한국법인과 해외 진출 지원 및 투자 협약을 맺고 해외 시장 개척에도 나서고 있다. 이 대표는 “데이터 분류는 AI 의료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의료 데이터 공유 플랫폼, 반려동물 의료산업 등 다양하게 확장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3억원의 매출을 올린 이 회사는 올해 20억원을 목표로 잡았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