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 누워 있는 비행기 터빈…그 안엔 우리가 날아온 역사 있다

입력 2022-03-31 17:15
수정 2022-04-01 01:49
차를 타고 서울 강서구 남부순환로를 따라 김포공항으로 가다 보면 아주 독특한 외관의 건물 하나와 마주치게 된다. 원형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얼핏 보면 비행기 이륙과 가속을 돕는 거대한 터빈과 비슷한 모양이다. 합죽선(부채)을 펼친 듯 혹은 사선으로 새 깃털을 꽂아놓은 듯한 형상도 떠오른다. 가만히 보다 보면 언젠가 빠르게 솟구쳐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해안건축에서 기본 및 실시설계를 시행해 2020년 7월 개관한 국립항공박물관의 자태다. 항공이라는 박물관의 큰 주제에 걸맞게 외관을 실제 비행기 엔진과 흡사하게 지었다. 하늘길을 열겠다는 포부 ‘터빈’ 디자인에 담아 서울 강서구 공항동에 자리한 국립항공박물관은 국토교통부에서 2020년 세운 박물관 겸 복합문화공간이다. 대한민국 항공 100년 역사와 성장 과정을 조사·발굴하고 보존해 우리 항공산업의 위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개관했다. 1948년 우리나라 첫 민간항공 운항이 시작된 역사적 장소이자 오랫동안 한국의 관문 역할을 했던 김포공항 바로 옆에 건립됐다. 항공산업을 대표하는 교육과 전시, 체험의 전당이 될 박물관을 짓고자 에어터빈(형태), 에어쇼(공간), 에어워크(동선)를 건축 콘셉트로 삼았다.

먼저 박물관은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간의 꿈을 유체역학과 기계미학으로 집약시킨 ‘에어 터빈’을 건물에 담아냈다. 항공갤러리를 유리와 알루미늄으로 감싸는 역동적인 외피는 제트 엔진의 터빈블레이드를 연상시킴과 동시에 학의 날개를 형상화했다. 전체적인 원형 디자인은 박물관이 공항과 지원시설 중심에 자리한 입지적 조건을 고려했다. 설계자는 남부순환도로, 항공지원센터, 주진입도로인 하늘길 등 모든 방향에서 봐도 정면성을 갖게 하고자 동그란 건물을 고안했다고 한다. 나선형으로 외관이 이뤄져 있어 어느 위치에서 봐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내부는 판테온을 연상시키는 구조 내부로 들어오면 빛과 그림자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멋진 빗살무늬의 음영을 만든다. 건물 전체를 투명 유리와 빗살무늬 외피들이 사선으로 감싸고 있어 건물 안과 밖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느낌이다. 에어터빈의 날개 입면 내부는 ‘에어쇼’라는 항공 갤러리 공간으로 연출했다. 전시동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비행하는 항공 맞춤형 전시공간에 어울리도록 원형으로 설계했다. 반면 관리동은 수장, 업무, 설비 등 기능에 최대한 충실할 수 있도록 직사각형으로 구획했다. 두 공간이 만들어낸 이질적인 기하학이 주변과 조화를 이루면서 그 속에서 대한민국 항공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나래홀이다. 자연 채광이 박물관 전 층을 관통해 천장에서 쏟아진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마치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돔 건축물인 판테온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1층에서 2층으로 연결된 ‘에어워크’는 동선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모든 비행기를 관통해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입체적인 관람 동선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다양한 높이로 공중에 매달려 있는 비행기들과 함께 산책하는 듯한 체험이 가능하다. 건물은 운영자와 이용자의 측면을 모두 고려해 지어졌다. 운영자들을 위해선 내부의 레이아웃 변화를 줄 수 있도록 경량벽체로 계획했다. 중앙의 아트리움과 메인동선을 타원형으로 설계해 관람에 필요한 이동거리를 단축하면서 동시에 전시·교육·체험에 필요한 추가적 공간을 만들어냈다. 건물은 3층에서 끝나지 않는다. 더 올라가면 공항 조망의 옥상정원과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서 김포공항으로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을 볼 수 있다.

이 박물관은 주인공인 비행기가 가장 돋보일 수 있도록 형태와 공간, 동선이 유기적으로 조합해 설계됐다는 점에서 사각형의 정적인 공간으로 대표되는 기존 박물관들과는 디자인적으로 차별화된다. 2020년엔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을 받았다. 또 완성도와 공공성, 사회기여도, 삶의 질 제고 등 심사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아 지난해엔 한국건축문화대상 준공건축물부문 사회공공부문 본상에 선정됐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