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기 부실위기’ 자영업대출 133조…인수위 "배드뱅크 검토"

입력 2022-03-31 16:24
수정 2022-03-31 16:38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코로나19 사태로 유동성 위기에 놓인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부실 채권 관리를 전담하는 '배드뱅크' 설립을 검토한다. 이 방안이 현실화하면 대출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가 끝난 후에도 빚을 갚을 여력이 없는 자영업자들은 맞춤형 채무 재조정을 받고 상환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을 전망이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은 31일 인수위 경제분과 업무보고에서 "지금처럼 단기간에 자영업자의 소득이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선 (대출 문제를)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소상공인진흥공단과 정부·은행이 공동 출자하는 일종의 '배드뱅크'를 만들어 (대출자가) 주택담보대출에 준하는 장기간에 걸쳐 낮은 금리로 대출을 상환할 수 있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달라"고 주문했다. 배드뱅크는 부실채권만 사들여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기관을 말한다.

이 방안은 윤석열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 공약한 일종의 '부실채권정리기금'을 구체화한 것이다. 앞서 윤 당선인은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 관리를 위해 긴급구제식 채무재조정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며 정책기금으로 자영업자의 부실 채무를 일괄 매입해 관리하겠다고 공약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정부의 '부실채권정리기금', 신용카드 사태 당시 노무현 정부의 '한마음금융',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이명박 정부의 '신용회복기금' 등과 유사한 형태다.

안 위원장은 "자영업자 대출 만기연장 및 상환유예를 6개월 연장한 것은 6개월 시한부 선고와 다를 바 없다"며 "산소호흡기만 계속 달아주는 대신 자가호흡할 수 있는 체력을 키워드려야 할 시기"라고 배드뱅크 검토 배경을 설명했다.

올 1월 말 기준 만기가 연장되거나 상환이 유예된 자영업자 대출은 총 133조3000억원(원금 기준)에 달한다. 지난해 4월 시작돼 올 9월까지 네 차례 연장된 이 조치가 끝나면 빚으로 코로나19 위기를 버텨온 영세 자영업자들이 무더기 부실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배드뱅크 성격의 전담기구 설립이 현실화하면 최대 5년 장기분할상환, 채무조정 등 시중은행의 연착륙 지원을 받아도 빚을 갚기 어려운 차주의 대출은 배드뱅크가 맡아 관리하게 된다. 대출자 입장에선 '신용불량자' 낙인이 찍히기 전에 일부 탕감을 포함한 맞춤형 채무재조정을 받을 수 있다. 신용대출도 주담대처럼 최장 30년에 걸쳐 빚을 갚아나갈 수 있도록 상환 구조가 바뀌면 대출자의 부담도 크게 줄게 된다.

특히 부실채권 회수·정리에만 집중했던 기존의 배드뱅크와 달리 통합적인 지원 체계를 구축해 자영업자의 '재기 지원' 역할까지 해야 한다는 게 인수위 안팎의 의견이다. 경쟁력이 있고 정상 경영 의지가 강한 자영업자에 대해선 폐업 비용, 전직 교육 지원 등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재원 조달 방안은 향후 논의 과정에서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날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이재학 신한은행 고문은 "은행들이 부실채권을 통상적인 매각가격의 3분의 1 수준으로 더 할인해서 배드뱅크에 넘기면 굳이 출연을 안 해도 사실상 현물출자를 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