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배터리 자원 선점하라"…군수법까지 꺼낸 바이든

입력 2022-03-31 14:19
수정 2022-04-14 00:31

미국이 전기자동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주요 광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6·25전쟁 당시 썼던 국방물자조달법(DPA)까지 동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오르자 핵심 자원을 둘러싼 수급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에 필수적인 광물의 증산을 유도하기 위해 이르면 31일 DPA를 발동할 예정”이라고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DPA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은 국가 안보를 위해 민간 기업에 정부계약을 우선 이행하거나 주요 물품의 생산을 확대하도록 주문할 수 있다. 6·25전쟁 당시 제정된 법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리튬 니켈 흑연 코발트 망간 등 전기차 배터리와 대용량 배터리 생산에 핵심적인 자원을 DPA 적용 대상에 추가하기로 했다. 이 자원들은 모두 전기차 수요 증가와 공급망 붕괴,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맞물리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블룸버그통신은 “바이든 정부는 미국 자동차업계의 배터리 공급망을 발전시키고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이미 지난해에도 인프라법을 통해 60억달러(약 7조2000억원)를 배정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는 DPA를 통해 해당 자원 생산을 늘리는 광산기업에 7억5000만달러(약 9000억원)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번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광산기업에 대출을 해주거나 광물을 직접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며 “가동 중인 생산시설의 생산성 향상 및 타당성 조사 등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터리 원재료를 재활용하는 방안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를 두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자원 안보의 중요성이 더 커진 상황에서 나온 선공”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을 시작으로 지정학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자원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란 관측이다.

미국 언론들은 “바이든 정부가 배터리용 자원 생산을 늘리기 위해 ‘냉전시대의 힘’을 사용하려 한다”고 묘사했다. 리치 놀란 미국광업협회(NMA) 회장은 로이터통신에 “우리가 이런 조치를 계속 취하지 않으면 지정학적 경쟁 상대국의 자원 지배력을 키워주는 꼴이 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미 백악관이 작년 7월 발표한 공급망 현황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 전체 수요의 2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광물자원(화석연료 제외)은 58개에 달한다. 21개에 불과하던 1954년에 비해 대폭 늘어났다. 미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특히 망간 흑연 희토류 등은 2020년 기준으로 미국 소비의 10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정부는 최근 들어 DPA를 자주 앞세우고 있다.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법을 활용한 바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의료용품 등 물자난을 해소하기 위해 동원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해 초 취임 이후 코로나19 백신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제약사를 상대로 DPA를 발동했다. 작년 글로벌 반도체 칩 부족 사태 때도 법안 발동을 검토했으나,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의 DPA 동원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국 배터리 관련주가 일제히 급등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이 대폭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호재로 받아들여졌다. 미국의 유일한 희토류 소재기업 MP머티리얼즈와 리튬기업 피에몬트리튬은 각각 3.2%, 8.7% 올랐다. 리튬아메리카는 11.6% 급등하며 11주 만에 최대 상승폭을 갈아치웠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