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전기요금 인위적 통제…선진국들은 어떻게 했나

입력 2022-03-31 07:30
수정 2022-04-30 00:01
발전연료 가격이 급격히 오르는 가운데 세계 주요 선진국들은 전기요금 인상을 일부 허용하되 소비자의 세금을 깎아주거나 전력회사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료비 연동제 원칙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전기요금 인상을 막으면서도 연료비 상승에 따른 금전적 부담을 온전히 한국전력에만 전가한 한국 정부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한국도 전력 시장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전기요금을 원칙에 입각해 인상하되, 세제 혜택 등의 방식으로 국민 부담을 덜어주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2월 전기요금을 4% 인상했다. 지난해 급격히 오른 연료비를 고려해 프랑스 전기위원회(CRE)가 전기요금을 용도에 따라 44.5~44.7% 인상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프랑스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프랑스 정부는 낮은 전기요금 인상률로 인해 손실을 떠안아야 하는 프랑스전력공사(EDF)에 공적자금 21억유로(약 2조8000억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EDF가 25억유로 규모의 신주를 발행하면 정부가 21억유로에 해당하는 주식을 사들이기로 한 것이다.

전력회사에 공적자금을 직접 투입하는 프랑스와 달리 영국은 전력 소비자에 대한 세제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연료비 급등에 대응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4월(9.2%)과 10월(12%)에 전기요금을 두 차례 올렸고, 올 4월에도 전기요금을 54% 추가로 인상할 계획이다.

대신 영국 정부는 증가할 수밖에 없는 소비자의 금전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주민세(council tax)를 연간 150파운드(약 24만원) 할인해주기로 했다. 또 5년 동안 상환하는 조건으로 가구당 200파운드(약 32만원)의 전기요금을 할인해주는 정책도 시행하기로 했다. 영국 의회에선 지원금이 지나치게 작다는 지적도 나왔다.

노르웨이 정부는 전기요금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정부가 초과분의 80%를 소비자 대신 전력회사에 지불하는 방식으로 연료비 인상에 대응하고 있다. 전기요금이 ㎾h당 0.7크로네(약 98원)가 넘으면 적용된다. 지원 대상 전력량은 가구당 5000㎾h로 제한된다. 작년 12월부터 이달까지 적용되는 이 같은 지원책으로 인해 노르웨이 정부는 약 89억크로네(약 1조2500억원)의 재정이 투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력회사나 전기 소비자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전력시장을 유지하고 있는 주요 선진국들과 달리 한국 정부는 연료비 급등으로 인한 금전적 부담을 모두 한전에 넘기고 있다. 정부는 지난 28일 한전을 향해 올 2분기부터 적용될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하라고 통보했다. 연료비 조정단가는 3개월마다 연료가격을 반영해 조정되는 전기요금의 한 항목이다. 올 들어 연료비가 급등한 만큼 연료비 연동제 원칙에 따라 연료비 조정단가도 상향 조정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정부는 "코로나19 장기화와 높은 물가상승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생활 안정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연료비 조정단가를 인상하겠다는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의 인위적인 전기요금 통제로 인해 정부 스스로 만든 연료비 연동제가 무력화되고 한전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게 됐는데도 정부는 마땅한 제도적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전력업계에선 정부가 장기적으로 연료비 연동제 원칙을 확고히 세우는 한편 단기적으로는 한전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2008년 글로벌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해 한전이 창사 이래 처음 영업적자(-2조7891억원)를 냈을 당시 에너지및자원사업특별회계 자금으로 6680억원의 보조금을 한전에 지급한 바 있다. 지난해 5조8601억원의 영업적자를 낸 한전은 올해엔 영업적자 규모가 20조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