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후보의 대선 승리가 확정된 지난 10일 새벽. 어느 유튜브에서 이재명 후보 지지자가 절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평화를 주장한 이 후보가 선거에서 졌으니 전쟁이 나게 생겼다. 이제 20대 남자들 다 죽는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어이가 없었다.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극단적 선거 슬로건 탓이라고 해도 엉뚱한 망상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경위야 어쨌든 전쟁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단언할 수 있겠나 싶었다. 우리가 싫어도 상대가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 가는 게 전쟁이다.
러시아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도 그랬다. 조 바이든이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정했다고 확신한다”고 말한 것이 지난 2월 18일이었다. 그리고 엿새 뒤에 전쟁이 터졌다. 전쟁 자체는 느닷없었지만 발발 요인까지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지정학적 불안은 연원이 있는 것이었다. 방아쇠를 당긴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었다. 이 종잡을 수 없는 독재자는 자국 군인들을 전쟁터로 보내면서 제대로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군 기강도 점검하지 않은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전사자들이 속출하자 중국에 지원을 요청하는 낭패까지 겪고 있다. 그래도 러시아에는 푸틴을 견제할 정당이나 시민세력이 없다. 전쟁을 시작한 사람도, 끝내는 사람도 푸틴이다.
전체주의 국가를 상대하는 나라들이 맞닥뜨리는 최대 위험은 독재자들의 예측 불가 폭주다. 청년들을 전장에 몰아넣으면서도 의회나 국민의 동의 절차를 받지 않는다. 국가주의 또는 민족주의로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 의사결정의 일차적 기준은 본인의 권력 유지와 강화다. 국익은 자신의 이익과 일치할 때만 유효하다. 장기집권을 위해서라면 국민 이익을 희생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러시아 못지않게 주변국을 핍박하는 중국 역시 시진핑 국가주석의 권력 의지와 한 몸이다. 시진핑은 종신 권력을 노리고 있다. 나름의 치밀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국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언제까지 집권할 것인지, 건강 상태는 어떤지, 후계자는 누구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언행 자체도 의뭉스럽다. 우리에게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시진핑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처음 만난 때는 2018년 3월. 김정은이 집권한 지 6년 이상이 지난 시기였다. 그것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려 하자 선수를 친 성격이 강했다. 자칫 북한이 본인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상황은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30대 초반에 집권한 김정은은 시진핑의 오랜 침묵과 외면에 애를 많이 태웠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 지원 없이 체제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 시절 시진핑은 다른 저울질을 했을 터. 아무리 60년 혈맹이라고 해도 3대째 권력을 세습한 새파란 독재자를 상대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본인 체면이나 위신이 크게 깎일 수 있다는 따위의 걱정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 무섭고 알기 어려운 상대는 김정은이다. 러시아, 중국보다 훨씬 폐쇄적이고 극단적인 1인 지배체제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분석가도 그의 판단과 행동을 예측하기 어렵다. 조건에 따라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는지, 어떤 조건이어야 하는지, 핵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미국을 설득할 것인지 등이 모두 안갯속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정말 궁금하다. 국민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대화와 인도적 지원에 매달린 문 대통령의 선심을 왜 그렇게 타박하고 조롱한 것일까. 외교안보 라인들을 만날 때마다 물어봤지만 대답이 모두 달랐다. “우리가 미국의 제재 완화를 설득하지 못하는 데 따른 불만”이라거나 “원래 자존심이 센 사람들”이라는 식이었다. “남측의 지원에 맛을 들이면 내부 단속을 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김정은에겐 한 가지 분명한 사실만 있다. 본인 권력을 유지하는 데 가장 결사적이라는 점이다. 이런 성향의 독재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다. 지금 그 힘을 한창 키우는 중이다. 푸틴, 시진핑, 김정은…. 대한민국은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위험한 독재자들 사이에 위태롭게 놓여 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약점과 한계를 너무 잘 아는데, 정작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