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정책으로) 지난 5년간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악착같이 버텨냈습니다.”
중견기업계 원로이자 보일러 역사의 산증인인 최진민 귀뚜라미그룹 회장(81·사진)의 목소리에는 결기가 배어 있었다. 최 회장은 지난 28일 서울 마곡동 귀뚜라미 냉난방기술연구소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 탓에 생존이 위태로운 처지로 몰렸던 그룹 계열사 센추리의 위기 극복담을 상세히 전했다.
연매출 1500억원 규모의 냉동공조회사 센추리는 국내 1위 원전 냉각기 제조업체다. 5년 전 갑작스러운 탈원전 정책 때문에 국내 신규사업 매출이 사실상 ‘제로(0)’가 됐다.
수출 확대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복구 사업에 참여하고 터키 프랑스 등의 원전에 냉각기를 수출하는 등 일감을 잇달아 따내며 회생의 계기를 마련했다. 올해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과 중국 원전 건설에 참여하며 사업에 탄력이 붙었다. 탈원전 충격파로 400억원대에 달하던 관련 분야 매출이 대부분 날아갔지만, 필사적인 수출로 지난해 200억원대까지 매출을 회복했다. 몇 년 안에 과거 수준으로 회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 회장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180명의 원전 기술 인력을 단 한 명도 줄이지 않았다”며 “수십 년간 쌓은 세계 최고 기술력을 사장시키지 않은 덕에 재기를 모색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차기 정부의 원전 중심 에너지 정책에 기대를 거는 귀뚜라미그룹은 2차전지, 반도체 공장 증설 등의 수혜도 기대하고 있다. 가정용 보일러 제조업체라는 대중적 이미지와 달리 그룹의 주력은 반도체 클린룸, 2차전지 드라이룸(항온·초저습 기능) 등 신산업이다.
최 회장은 “1조3500억원인 귀뚜라미그룹 매출에서 이미 보일러 비중(32%)을 냉동·공조 매출(41%)이 뒤집은 지 오래”라고 강조했다. 그는 “각종 신사업이 시너지를 내 5년 안에 매출 3조원을 올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