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전력이 29일 전기요금의 핵심인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했다. 전력량 요금(기준 연료비)과 기후환경 요금만 지난해 12월 예고한 대로 ㎾h당 4.9원과 2.0원씩 6.9원 올리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이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감한 전기요금 인상 책임을 서로 떠넘긴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결정으로 월평균 307㎾h를 사용하는 4인 가구의 전기요금은 다음달부터 월 2120원 오르지만, 한국전력의 손실 구조는 지속돼 올해 영업적자가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된다.
한전은 애초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h당 3.0원 인상해달라고 지난 16일 정부에 건의했다.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손실을 메우기 위해선 ㎾h당 33.8원 올려야 하지만 분기별 최대 인상폭을 고려해 3.0원 인상을 요청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이마저 거부했다.
산업부는 물가 급등과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국민 생활 등을 이유로 제시했다. 하지만 전기요금 인상 책임을 5월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에 미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당선인 측은 대선 때 4월 전기료 인상 백지화를 공언했지만 당선 후엔 현 정부가 새 정부 출범 전에 전기료 인상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했다. 최근엔 “이번 전기료는 현 정부가 결정할 일”이라며 ‘소폭 인상’을 용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과 연료비를 연동한다는 취지로 도입한 분기별 연료비 조정단가 조정제도가 정치 논리에 따라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사상 최대 손실이 예상되는 한전의 경영 부담은 가중되게 됐다. 한전은 연료비 조정단가를 올리지 않으면 올해 약 18조~20조원의 영업적자가 예상된다. 문제는 이 부담이 결국 국민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한전은 2008년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하자 6680억원의 공적자금을 받아 손실을 메웠다. 이어 6년간 전기료를 41.6% 인상했다. 정부가 이번에 필요한 전기요금 인상분(기준 연료비와 기후환경 요금 6.9원+연료비 조정단가 3.0원) 중 일부만 올렸지만 한전의 적자가 늘어나면 나중에 세금 등으로 메워야 한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신구 권력 갈등에 휘둘리면서 전기요금이 정치화한 것은 불행한 일”이라며 “이대로 가면 한전은 재정 투입이 불가피한 한계상황에 빠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지훈/정의진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