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엔=1000원' 깨졌다…'안전자산' 일본 엔화에 무슨 일이 [김익환의 외환·금융 워치]

입력 2022-03-29 09:51
수정 2022-03-29 10:57

달러, 금과 함께 안전자산으로 꼽히던 일본 엔화의 가치가 연일 곤두박질치고 있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2015년 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원화 대비로도 2018년 후 가장 낮았다. 주요국이 정책금리를 올리는 반면에 마이너스 금리를 고집하는 일본 중앙은행 통화정책에 외국인 자금이 일본을 등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하는 등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 우려감이 번진 것도 엔화가치 약세로 이어졌다.'100엔=1000원' 깨졌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 28일 장중에 1달러당 125엔대까지 떨어지면서 2015년 8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날 원·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3원66전 내린 100엔당 996원55전에 마감했다. 이날 원·엔 환율은 2018년 12월 14일(995원90전) 후 3년3개월 만에 최저치다.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배경으로는 크게 넉넉한 외화자산과 탄탄한 경제 기초체력이 꼽힌다. 올해 1월 말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1조3859억달러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일본은 1990년부터 저성장 국면을 이어가자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린 투자자들이 해외 자산을 적극적으로 사들인 결과다.

엔화가 기축통화인 데다 외환보유액이 많은 만큼 외화부채 상환 부담이 크지 않고 금융위기나 국가부도 위기 가능성도 작다. 경제성장률은 낮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성장률 변동 폭은 크지 않다. 2010~2019년 일본의 성장률 연평균은 1.3%로 집계됐다. 최근 2018년 0.3%, 2019년 0.7%로 0%대를 유지하고 있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일본은 저성장·저물가 흐름을 보이는 등 경제활력이 떨어지지만, 성장률 변동성이 크지도 않다"며 "안정적 성장 흐름은 엔화가 안전통화로 인식되는 배경"이라고 말했다.마이너스 금리 고집하는 일본銀작년 들어 일본 엔화를 둘러싼 대외환경이 심상찮게 흘러갔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완화적 통화정책을 이어가기로 결정하면서 엔화 가치를 끌어내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과 상반된 움직임으로 고금리를 좇는 외국인 투자금이 일본을 빠져나갈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됐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지난 17~18일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정책금리를 연 -0.1%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장기 금리를 연 0% 수준으로 유지하는 장단기 금리 운영정책과 상장지수펀드(ETF) 등의 매입 방침을 비롯한 현재의 양적·질적 완화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

일본은행은 소비자물가가 물가안정목표치(2%)를 안정적으로 웃돌 때까지 완화적 통화정책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지난달 일본의 소비자물가가 0.9%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중장기적으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제 펀더멘털도 예전만 못하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코로나19 직후 일본 경제의 회복 속도는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더뎠다. 2019년 국내총생산(GDP)을 100이라고 하면 일본의 2022년 GDP는 100으로 전망됐다. 3년 만에 겨우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2022년 미국(106.1) 캐나다(103.2) 독일(101.7) 프랑스(101.6) 영국(101.1) 이탈리아(100.4)는 물론 한국(106.2) 등이 100을 웃돈 것과 비교해 일본의 회복 속도는 느린 셈이다.외환보유액 석달새 211억달러 증발 일본의 외화조달선인 경상수지도 흔들리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자재 가격이 치솟으면서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폭이 줄어든 결과다. 일본의 무역수지는 원자재 가격이 치솟은 작년 8월 적자로 전환했고 이후 올해 2월까지 7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하면 기업 등이 수입대금을 지급하기 위해 엔화를 팔고 달러를 비롯한 외화를 사들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엔화가치는 더 떨어지게 된다. 엔화로 환산한 원자재 가격이 뜀박질하면서 경상수지 적자폭이 불어난 악순환을 불러올 수도 있다. 경상수지 적자가 나면서 일본의 외환보유액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작년 11월 1조4057억달러에 달한 외환보유액은 지난 2월 1조3846억달러로 211억달러나 증발했다.

펀더멘털 약화로 일본의 높은 국가부채 비율도 재부각됐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0년 일본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58%로 베네수엘라에 이어 세계 2위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