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생산라인에서 조립하는 차량 종류를 수시로 바꿀 수 있는 ‘다차종 생산 시스템’을 국내 공장에 도입한다. 이로써 한 라인에서 5종 이상의 차량을 제조하는 이른바 ‘혼류 생산’이 가능해진다.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생산성도 크게 높이기 위해서다. 같은 모델의 차량이라도 고객이 원하는 부품을 맞춤형으로 장착할 수 있어 ‘1석 3조’의 효과를 거둘 것으로 회사 측은 보고 있다.
조립 라인 따라 부품 자동 이동27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오는 8월부터 울산3공장에 다차종 생산 시스템을 도입한다. 이를 위해 오는 4월 말~5월 초, 7월 말~8월 초 두 차례 공사를 진행한다. 울산3공장은 2개 라인에서 아반떼와 베뉴, i30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차량에 탑재할 부품을 자동으로 근로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컨베이어벨트 뒤쪽 수납함에 부품을 쌓아놓고, 근로자가 하나씩 가져다가 조립하는 현재 방식으로는 여러 종류의 차량을 조립하는 게 불가능하다. 차종마다 다른 부품이 들어가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부품을 둘 공간이 없어서다.
현대차는 차량 한 대를 조립하기 위해 필요한 부품을 카트 모양의 물류대차에 실어 옮기는 방법을 채택해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다. 물류대차는 작업자 뒤쪽에 깔린 별도의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차체와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작업자는 물류대차에서 부품을 집어 조립하면 된다. 조립 공장 내에 부품을 쌓아둘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작업자가 부품을 잘못 장착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다차종 생산 시스템이 정착되면 혼류 생산도 가능하다. 현재는 라인별로 1~2종의 차량을 조립하고 있는데, 한 라인에서 10종 이상의 차종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인기에 따라 생산 유연하게 조정 가능현대차는 울산3공장에 다차종 생산 시스템을 시범적으로 도입한 뒤 다른 국내 공장으로도 확대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의 혼류 생산 체제 도입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글로벌 경쟁사에 비해 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요타와 폭스바겐, 제너럴모터스(GM) 등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는 이미 혼류 생산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 역시 브라질, 미국, 중국 등의 공장에는 이 시스템을 진작 도입했다. 르노코리아자동차 등 한국에 공장을 둔 다른 완성차 업체도 마찬가지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상식에 가까운 제조 방식이지만 유독 현대차와 기아의 국내 공장에서만 이 시스템을 활용하지 못했다. 노조가 반대해 왔기 때문이다. 노조는 한 라인에서 여러 종류의 차를 생산하면 업무 강도가 높아지고, 생산직 인력 감축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노조도 결국 회사 제안을 큰 틀에서 수용했다. 기존 시스템을 고집해 생산성이 낮아지면 근로자도 손해를 본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3공장 노조와 최종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장마다 생산 차종이 고정되면 해당 모델의 인기 여부에 따라 작업 물량이 지나치게 많거나 부족한 상황이 반복된 것도 노조가 생각을 바꾼 원인 중 하나로 알려졌다. 혼류 생산 체제가 자리 잡으면 인기에 따라 생산량을 유연하게 바꾸는 게 가능하다. 현재는 특정 차종의 판매량이 급증하더라도 생산량을 확 늘리기 어렵다. 특근(주말 근무)으로 20%가량 생산을 늘리는 게 고작이다. 반대로 인기 없는 차량을 조립하는 라인은 빈 컨베이어벨트를 돌리는 ‘공피치’를 운영해야 했다. 특근을 많이 할수록 받는 수당이 늘어나는 구조 때문에 각 공장 노조들은 서로 더 많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차례 갈등을 빚었다.
현대차는 최근 한 차종을 여러 공장에서 조립하는 공동 생산도 늘리고 있다. 팰리세이드를 울산2공장과 4공장에서, 스타리아를 울산4공장과 전북 전주공장에서 함께 만드는 게 대표적이다. 코나도 내년 완전변경모델(풀체인지) 출시를 계기로 울산1공장과 3공장에서 공동 생산할 계획이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