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대한민국을 다시 만들자

입력 2022-03-27 17:00
수정 2022-03-28 00:07
정권 교체가 화두였던 대선이었다. 과정이 아름답지 않았음에도 근소한 차이로 정권이 교체된 것은 문재인 정부의 명분보다 결과에 대한 평가가 무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속적으로 더 평등한 사회를 내세웠고 양극화 해소를 강조했지만, 일자리 불평등은 심화됐고 집값 폭등으로 자산 양극화는 참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새 정부는 경제에 성과를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어렵게 정권 교체가 됐지만 큰 기대를 거는 분위기는 아니다. 단순히 국회의 여소야대 현실 때문만이 아니라 나라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일거에 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한 방이 존재하기 어려운 시대라는 것을 모두가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경제가 성장하고 시스템이 성숙할수록 성과를 내는 변화를 일으키기는 어렵기 마련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작은 변화가 모여 큰 개선이 될 수 있도록 원칙과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이다.

성과 내기에 실패한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명분이 ‘소득주도성장’이다. 다짜고짜 소득을 늘려주면 그 돈을 쓰는 과정에서 생산이 자극돼 경제가 성장하고 그 결과 다시 소득이 증가하는 선순환이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많은 경제학자가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비판한 핵심은, 소득은 생산 활동에 참여한 대가이지 근거 없이 저절로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즉 상품을 만들든 서비스를 제공하든 생산 활동에 활기가 돌아야 일자리가 늘고 소득이 증가한다. 따라서 정부의 최우선 경제 과제는 생산 활동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라 할 것이다. ‘만들다’라는 단어의 중의성을 살린다면 ‘다시 만드는 대한민국’이 명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산 활동의 첫 단추인 비즈니스의 기회 발굴은 자영업자든 대·중·소기업이든 민간에서 기업가정신 충만한 사람들이 할 일이다. 정부가 할 일은 비즈니스 기회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데 걸림돌을 제거하거나 최소한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걸림돌이 규제다. 규제 개혁은 정권마다 반복된 상투어일 만큼 중요한 정책 방향이다. 규제 개혁의 체계적 접근으로 의미가 있었던 대표적인 변화에는 김영삼 정부 말에 제정돼 김대중 정부 초 시행에 들어간 행정규제기본법이 있다. 이 법에 의거해 규제개혁위원회가 설치됐는데, 위원회는 신설이나 강화되는 규제를 심사하고 기존 규제의 정비에 대해서도 심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규제를 규제하는 기관인 셈이다.

규제개혁위원회는 지금도 존재하고 이후의 대통령들도 규제 개혁을 한결같이 강조했는데, 왜 현장에서는 규제 때문에 사업 못 하겠다는 목소리가 더 커졌을까. 규제 강화의 한 원인은 의원입법 증가에서 찾을 수 있다. 정부가 규제를 신설·강화하는 입법을 추진하는 경우 해당 규제가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를 받아야 하지만, 국회의원이 그런 입법을 추진할 때는 그런 절차가 없다.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 중 규제 심사를 받지 않는 의원 발의 법안 비중은 17대, 18대 국회에서는 70% 정도였는데 2012년 출범한 19대 국회에서 86.4%로 폭증하더니 20대에서 90.4%, 21대에서 현재까지 92.5%로 증가 일로이다. 지금도 논란 중인 임대차 3법, 중대재해처벌법 등이 모두 의원입법 사례다.

의원입법과 별도로 문재인 정부에서 가중된 문제는 기업인을 비롯해 많이 버는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 52시간 근로제와 같은 노동 규제 강화 과정에서 정부와 여당은 규제로 인한 인건비의 증가는 고용주가 당연히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단죄하듯 밀어붙였다.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안 추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러고 틈만 나면 일자리를 내놓으라는 조임을 당하니 기업들이 자꾸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정권 교체로 기업이 억눌리는 분위기는 어느 정도 풀어질 것이다. 하지만 규제의 영향을 평가하도록 의원입법 절차를 개선하는 것은 국회 스스로 할 일이라 쉽지 않다. 그럼에도 소망한다. 이 정부가 생산 활동에 활기를 불어넣는 규제 개혁을 이뤄내는 모습을 보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