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한국전력 자회사 네 곳의 사장을 대상으로 2017년 사퇴 압박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는 이른바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이 사건은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2019년 1월 백 전 장관과 이인호 전 산업부 차관 등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로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관련 수사팀이 좌천성 인사 등으로 와해하면서 지난 3년간 답보 상태가 이어졌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검 기업·노동범죄전담부(부장검사 최형원)는 이날 산업부 원자력발전산업정책국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해당국을 포함해 에너지산업실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수색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압수수색은 산업부가 2017년 한국남동발전 등 한전 자회사 네 곳의 사장에게 사퇴를 종용했다는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를 위한 조치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백 전 장관 등의 압박으로 네 명의 사장이 일괄 사표를 냈다”며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을 제기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수사를 맡은 동부지검은 그해 5월 장재원 전 남동발전 사장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진상조사를 했지만, 그동안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검찰 관계자는 “계속 수사해온 사안으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문을 확인한 뒤 압수수색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및 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지난 1월 확정했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검찰이 이번 압수수색을 ‘신호탄’으로 현 정부 관련 각종 비리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비롯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정치적 파장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권력 교체기에 갑자기 진행된 검찰의 압수수색은 이른바 ‘정치보복’이 시작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김의겸 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사단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작품이다. 올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 몰랐다”며 “(검찰의) 칼끝은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다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진성/이광식/고은이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