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표 기업 도시바가 기업가치와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추진한 회사 분할안이 행동주의펀드 주주들의 반발로 좌초됐다. 해외 펀드 주주와의 대립이 심해지면서 도시바가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에 통째로 팔릴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24일 열린 도시바 임시주주총회에서 회사가 제안한 기업 분할안이 50% 이상 지지를 얻지 못해 부결됐다. 도시바는 지난해 11월 회사를 인프라서비스와 디바이스, 세계 2위 낸드플래시업체인 키오시아홀딩스(옛 도시바메모리) 지분 40%를 보유한 관리회사 등 3개로 나누고 2023년 하반기에 재상장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매각 방어장치 사라져
일본에서 도시바의 기업 분할안은 일본 대기업의 고질병으로 지적되는 ‘복합기업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조치로 기대를 모았다. 복합기업 디스카운트는 비효율적인 경영 탓에 기업 전체 가치가 계열사 가치를 합한 것보다 낮은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도시바 지분 25% 이상을 보유한 행동주의펀드들이 “미니 도시바 3개가 생겨날 뿐”이라며 반대 의사를 밝히자 도시바의 계획은 휘청거렸다.
4개월 만인 지난달 도시바는 디바이스 부문만 떼어내는 2분할안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공조 자회사인 도시바캐리어와 엘리베이터사업부, 조명사업부를 매각해 2000억엔(약 2조원)의 자금을 마련하고 이 돈을 주주환원에 쓰겠다고도 약속했다.
분할안이 부결되자 도시바가 결국 매각될 것이란 관측이 커지고 있다. 분할안이 도시바 매각을 방어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작년 3월 영국계 사모펀드 CVC캐피털은 2조3000억엔에 도시바 지분 100%를 인수한 뒤 상장폐지하겠다고 제안했다. 매각을 주도한 구루마다니 노부아키 사장을 몰아내고 새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된 쓰나카와 사토시 사장이 비상장화(회사 매각)를 반대하면서 내놓은 타개책이 기업 분할안이었다.
도시바가 기업 분할을 밀어붙일 때도 글로벌 사모펀드와 인수 협상을 벌인다는 설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달 말 닛케이비즈니스는 “블랙스톤과 도시바가 매각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양측은 이 보도를 즉각 부인했다. 회계 부정이 분란의 씨앗행동주의펀드가 도시바의 경영을 좌지우지하게 된 건 2015년 대규모 회계 부정 사태가 시발점이 됐다. 도시바가 2008~2014년 7년간 2200억엔의 이익을 부풀린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현직 사장 등 세 명이 한꺼번에 사임했다.
도시바가 2006년 인수한 원자력발전 자회사 웨스팅하우스에서 발생한 대규모 손실은 도시바의 지배구조뿐 아니라 재무구조까지 무너뜨렸다. 자본잠식에 빠진 도시바는 2017년 12월 6000억엔 규모의 증자를 했다. 2년 연속 자본잠식으로 인한 상장폐지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60여 곳에 달하는 해외 행동주의펀드가 증자에 참여해 주주가 됐다. 상장폐지를 면하는 대신 분란의 씨앗을 심은 결과가 됐다. 사장 연임과 임원 선임에 대한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도시바는 2018년 6월 7000억엔, 2021년 1500억엔 규모의 주주환원 계획을 내놨다. 2017년 증자로 수혈한 자금보다 주주환원을 위해 쏟아부은 자금이 2500억엔 더 많다.
분할 계획을 2분할안으로 바꾸면서 도시바는 2년간 1000억엔이던 주주환원 규모를 3000억엔으로 세 배로 늘렸다. 주주환원 규모가 도시바의 한 해 연구개발비와 맞먹는다. 산케이신문은 “벌어들인 이익의 일부를 돌려주는 게 아니라 사업체를 팔아서 주주환원 자금을 마련하는 건 순서가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