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사진)는 “성장, 물가, 금융 안정을 어떻게 균형 있게 고려하면서 통화정책을 운용해 나갈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겠다”고 24일 밝혔다. 통화정책 운용 변수로 성장을 우선 언급한 만큼, 이 후보자가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 후보자 “경기 리스크 우려”이 후보자는 이날 한은을 통해 배포한 지명 소감문에서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국내 인플레이션과 경기 리스크가 동시에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후보자는 현재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으로 미국 워싱턴DC에 있다.
그는 “최근 미국 중앙은행(Fed)의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가 빨라지는 가운데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중국 경제의 둔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어 국내외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 후보자는 이어 “앞으로 지난 8년여간 IMF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경제가 처해 있는 여러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금융통화위원들과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달 말 퇴임하는 이주열 현 총재에 대해서는 “8년 동안 한은을 잘 이끈 이 총재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지난 2년 동안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적극적 정책 대응과 그 이후 선제적이고 질서 있는 통화정책 정상화를 추진한 데 대해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 시점 늦출까이 후보자 소감문은 원론적 수준이지만 통화정책 운용 과정에서 고려할 사안으로 성장을 우선 언급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롯해 실물 경제를 훼손할 대내외 변수에 대한 상당한 우려를 드러낸 것도 주목된다.
통화정책 운용 과정에서 물가, 금융 불균형을 주로 언급한 이 총재 발언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 총재는 지난달 24일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의 통화정책은 높은 물가 오름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금융 불균형 위험을 줄여 나갈 필요성에 따라 완화 정도를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성장을 우선 언급한 만큼 금리 인상 속도를 다소 늦출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금리 인상이 자칫 경기 하강 속도를 더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한은 안팎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한은과 금통위는 그동안 치솟는 물가와 흔들리는 금융 안정을 고려해 올해 두세 차례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지난달 열린 금통위 회의를 보면 금통위원 4명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서야 한다”는 뜻을 시사했다.
하지만 성장을 강조한 이 후보자가 총재로 취임할 경우 이 같은 금리 인상 속도가 더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신얼 SK증권 연구원은 “이 후보자가 한은 총재로 부임하면 채권금리 하락 재료로 작용할 수 있다”며 “고령화로 민간 경제의 역동성이 저하될 것이라는 이 후보자 판단에 따라 기준금리 인상폭이 커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론도 만만찮다. 불어난 민간부채에 대한 경계심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는 올 1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동성에 의존해 (국가 및 가계)부채 비율이 계속 늘어나면 금융시장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한국도) 금리 인상을 통해 힘이 들더라도 부채 비율을 조정해야 하는 그런 시점에 와 있다”고 말했다. 불어나는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억제하는 등의 목적을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서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