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는 색다른 주제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주제는 막걸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전략.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각계 전문가들이 참석해 의견을 나눴다.
‘막걸리 빚기’는 지난해 4월 국가무형문화재로 선정됐다.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의 사전 포석을 마쳤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일본 전통 청주인 사케(日本酒·SAKE)와 쇼츄(酎·しょうちゅう)도 작년 10월 일본식 누룩균인 코우지(·こうじ)를 사용한 전통주 제조 방법이 국가무형문화재에 등록됐다. 이번 달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신청할 예정이다. 한국보다 한발 빠른 셈이다.
일본이 자국 술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목적은 단순하다. 지방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다. 현재 등록한 일본식 청주 양조장은 약 1400곳. 양조장 대부분은 대도시가 아니라 지방 소도시에 있다. 지방 경제와 문화를 이끄는 중요한 콘텐츠다. 단순히 술을 빚는 곳을 넘어 다양한 역사, 문화는 물론 공익적인 활동도 한다. 프랑스의 와이너리, 영국의 위스키 양조장처럼 문화관광산업을 이끌고 있다.
문화산업은 커지고 있지만 양조장의 수와 술 소비는 현저하게 줄고 있다. 1970년 3500곳이던 일본 청주 양조장은 1400여 곳으로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소비가 늘고 있는 품목이 있다. 쌀의 품종, 도정, 숙성, 발효 방식으로 차별화한 특정명칭주(特定名酒)라고 불리는 프리미엄급 제품이다. 이 제품들은 20년 연속 수출이 늘고 있다. 박리다매 전략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프리미엄 제품 마니아층은 점점 두터워지고 있다. 프리미엄 사케 생산지로 유명한 니가타에서 열리는 ‘사케노진(酒の陣)’이란 축제를 보면 알 수 있다. 전국 각지에서 사케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 약 20만 명이 수십만원의 교통비를 들여 축제를 즐기기 위해 찾아온다. 팬층을 확대하고 관리하는 것은 일본 프리미엄 사케들의 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 과정에서 일본이 선택한 전략도 참고할 만하다. 단순하게 주종으로 술을 나누지 않고 일본식 누룩을 사용한 술빚기(統的酒造り)를 공통 분모로 삼아 일본식 탁주, 청주, 소주, 여기에 미린 등 맛술까지도 포함시켰다. 만약 등재에 성공하면 일본 모든 술의 격이 올라간다.
이에 비해 한국은 아직 막걸리에 대한 학문적 정체성도 확립하지 못했다. 게다가 ‘막걸리 빚기’란 하나의 주종밖에 준비하지 않았다. 자칫하다간 한국의 청주, 약주, 전통 소주는 이번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에서 멀어질 수 있다. 한국의 모든 술은 이 막걸리에서 나오는데도 말이다. 맑은 부분만 분리해서 숙성하면 약주, 청주가 되고, 증류하면 전통 소주가 나온다. 결국 막걸리는 모든 한국 술의 뿌리인 셈이다. 이런 공감대를 기반으로 한국 술의 격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 한 나라의 전통술은 단순히 마시고 취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격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주류 인문학 및 트랜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넷플릭스 백종원의 백스피릿에 공식자문역할을 맡았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술자리 인문학'을 시작하였다.
주류 인문학 및 트랜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넷플릭스 백종원의 백스피릿에 공식자문역할을 맡았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술자리 인문학'을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