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당한 편의점 알바생 "70만원 물어줬는데…"

입력 2022-03-24 09:46
수정 2022-03-24 10:24

편의점 직원이 보이스피싱을 당해 업장에 피해를 줬다고 해도, 전체 피해 금액의 30%만 부담하는 것이 공평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4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제주지방법원(단독 노현미 판사)는 지난해 12월 9일 전 편의점 알바생A가 편의점주 B를 상대로 청구한 부당이득금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했다.

수도권 출신이지만 제주도로 유학 온 A는 2021년 3월 제주시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런데 취업 3일째 되는 날, A는 편의점 본사 직원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됐다. 매장 내 구글기프트 카드의 재고를 확인해야 한다며, 카드의 핀(PIN) 번호를 전송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구글 기프트 카드는 모바일 유료 서비스에 사용되는 선불결제 수단으로 상품권처럼 사용되고 있다.

A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이에 응했고, 결국 이틑날 보이스피싱임이 드러났다. 편의점주 B는 A에게 손해액 70만원을 모두 물어내라고 요구했다. A는 먼저 배상했지만, 점주의 책임도 일부 있다고 판단해 배상액의 일부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점주가 거절하자 말다툼이 벌어졌고, 결국 A는 아르바이트 두 달 만에 해고당했다. 이에 점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A를 대리한 공단 측은 "A는 점주로부터 보이스피싱 등 사기 피해 예방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며 "보이스피싱 수법도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변종 수법"이라고 강조했다. 또 피고용자가 업무수행 중 고용주에게 피해를 줬더라도, 업무내용과 근로조건, 고용주의 피해예방 노력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 피고용자의 책임을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의 대법원판결도 인용했다.

대법원은 이런 경우 “근로자의 업무내용과 근로조건 및 근무태도 등 제반 사정에 비춰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견지에서 신의칙상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한도 내에서만 손해배상 청구나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라고 보고 있다.

결국 법원은 A와 공단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점주의 책임이 70%에 이르는 것으로 판단했고, 49만원을 A씨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판시했다.

A를 대리한 김미강 공단 변호사는 “사회 경험이 적은 청년들은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적절한 수준의 법률 상식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