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31일 임기가 만료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사진)는 한은에서만 43년을 근무했다. ‘최장수 한은맨’으로서 선제적 금리 정책을 전개하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그는 떠나는 날을 앞두고서도 금리인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총재는 23일 열린 송별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오름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금융 불균형 위험을 줄여나갈 필요성이 여전히 크다”며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계속 줄여 나가야 한다”고 금리인상이 필요하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그러면서 “금리인상은 경제 주체의 금융비용 부담으로 이어지는 탓에 인기 없는 정책”이라면서도 “자칫 타이밍을 놓치면 국가 경제 전체적으로 훗날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원 정선 출신인 이 총재는 1977년 한은에 입행한 뒤 조사국장, 정책기획국장, 부총재보, 부총재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2012년 4월 부총재에서 퇴임한 뒤 2014년 총재로 복귀했고 2018년 연임에도 성공했다. 한은 총재가 연임한 것은 2대 김유택(1951∼1956년), 11대 김성환 총재(1970∼1978년)에 이어 역대 세 번째다.
2014년 4월 총재로 부임한 직후 지난달까지 총 76회의 기준금리 결정 회의(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를 주재했다. 그가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으로서 참석한 결정 회의에서 기준금리 인하는 아홉 번(임시 금통위 0.5%포인트 인하 포함), 인상은 다섯 번 결정했다. 이 총재가 취임할 당시인 2014년 4월 연 2.5%였던 기준금리는 현재 연 1.25%로 떨어졌다. 이 총재는 금리 결정에 대해 “고심 없이 쉽게 이뤄진 결정은 한 번도 없었다”며 “예측 자체가 불가능한 비경제적 요인에 의한 사건들이 빈발하다 보니 적시에 정책을 펴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이 총재의 금리 결정은 선제적이었고 과감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년 8월과 11월, 올해 1월에 걸친 세 차례 금리인상이 대표적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우려를 과소평가하면서 금리인상에 머뭇거리던 때다.
총재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에 대해서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을 꼽았다. 그는 “2년 전 상상할 수 없던 위기가 오면서 경제부총리, 금융위원장, 관계기관장들과 긴박하게 협의하고 토론한 일이 기억난다”고 했다.
하지만 한은 직원들 사이에서는 아쉬운 목소리도 있다. 내부 출신인 만큼 조직 안에서 발생하는 임금 등 처우 개선 문제 등을 해결하길 바라는 기대의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물러나게 됐다. 그는 임직원 급여 수준 문제에 대해 “재임 기간에 개선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떠나지 않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 총재는 “총재로 부임하면서 ‘중앙은행의 존립 기반은 국민의 신뢰’라는 마음가짐으로 직책을 수행했다”며 “국민의 신뢰는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한 통화정책에서 비롯한다는 점을 한은 임직원들이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