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주를 비롯해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이 주로 사용하는 경유 평균 가격이 2008년 이후 13년 만에 L당 2000원을 돌파했다. 서울 일부 주유소에선 경유값이 휘발유값을 추월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수급 부족으로 경유값 급등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경유차를 이용하는 서민들의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3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전 기준 서울 평균 경유 가격은 L당 2002.09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시간 서울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2080.19원)과의 차이는 78.1원에 불과하다. 경유 가격은 전날 오후 3시 기준으로 L당 2001.24원으로, 2008년 7월 이후 13년8개월 만에 처음으로 2000원을 넘어선 뒤 추가 상승했다. 한 달 전(1643.0원) 대비 400원 가까이 올랐다.
서울 지역 일부 주유소에선 경유값이 이미 휘발유값을 앞질렀다. 통상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L당 200원가량의 차이가 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유업계는 경유값 폭등이 경유 차량이 많은 유럽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수급 문제가 불거진 데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경유 수입에서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달한다. 러시아산 경유 수입이 사실상 막히면서 유럽에서 경유 가격이 치솟았고, 아시아 석유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인 지난 1월 초 배럴당 90달러대였던 국제 경유 가격은 이달 21일 싱가포르 시장 기준 144.76달러에 거래됐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지난해 말부터 시행하고 있는 유류세 20% 인하 조치가 경유와 휘발유 가격 간 격차를 좁혔다는 분석도 나온다. 통상 유류세는 산업용 및 소상공인용으로 주로 사용되는 경유보다 휘발유에 더 많이 부과된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12일부터 유종과 관계없이 유류세를 20% 인하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기존에 세금을 많이 냈던 휘발유가 경유보다 더 큰 인하 혜택을 보게 된 것이다.
당시 유류세 인하에 따라 휘발유와 경유는 L당 164원, 116원씩 가격이 내려갔다. 경유 인하 폭이 휘발유보다 50원가량 적었다. 2008년 3월부터 12월까지 유류세가 10% 인하됐을 때도 2008년 여름께 경유값이 휘발유 가격을 추월하기도 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주간 기준으로 당장은 경유값이 휘발유 가격보다는 낮은 수준으로 유지될 것”이라면서도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면 경유값이 본격 추월할 가능성도 높다”고 밝혔다.
화물업계는 경유값 폭등으로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며 정부에 긴급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 경유차 비중이 높은 편이다. 국내에서 운행 중인 차량 약 2600만 대 중 경유차는 38%가량인 1000만 대다. 이 중 화물차가 330만 대로 30%를 넘는다. 화물업계에 따르면 평균 운송료의 30% 이상이 유류비로 지출된다.
‘서민의 발’로 불리는 경유 1t 트럭은 푸드트럭, 다용도탑차 등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가 생계형 창업에 많이 활용하는 운송 수단이다. 택배 등 물류업계 종사자들도 대부분 경유 화물트럭을 활용하고 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