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팍스 이준행 대표 "회원에게 신뢰받는 '선비 거래소' 명성 지키겠다"

입력 2022-03-21 17:28
수정 2022-03-22 00:25

“새로 시작하는 기분입니다. 그래도 늦진 않았다고 봐요. 자산관리 분야의 강점을 살려 한국을 대표하는 가상자산 거래소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암호화폐거래소 고팍스 창업자인 이준행 스트리미 대표(38·사진)의 포부다. 고팍스는 지난달 전북은행과 실명계좌 발급 제휴를 맺는 데 성공했다. 실명계좌를 확보하면 원화로 암호화폐를 사고파는 원화마켓을 운영할 수 있다.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의 4대 거래소가 주도하던 시장이 ‘빅5 체제’로 바뀌는 것이다.

대원외국어고와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과를 졸업한 수재인 그가 창업을 생각한 것은 자이툰부대 소속으로 이라크에 파병된 2008년부터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계기로 달러 기축통화 중심의 경제 시스템을 둘러싼 논쟁에 불이 붙던 시기다. 6년 뒤 맥킨지 컨설턴트 시절 비트코인을 접하면서 ‘블록체인 금융회사’ 창업 구상을 가다듬었다. 스탠퍼드대, USC 등 해외 유학파 친구들과 함께 2015년 스트리미를 세웠다.

고팍스는 암호화폐업계에서 ‘선비 거래소’로 꼽힌다. 경쟁사들이 100~200개 안팎의 암호화폐를 상장하며 거래량을 늘렸지만 고팍스는 79개에 그쳤다. 5년간 해킹이나 불공정 거래로 구설에 오른 적이 없고, 업계 최초로 상장 원칙도 공개했다. 우크라니아 사태 때는 러시아인 계좌를 선제적으로 동결하기도 했다.

원래 스트리미는 블록체인 기반의 해외 송금 서비스로 출발했지만 규제에 막혀 해외 사업을 제대로 펴볼 수 없었다. 후속 아이템으로 도전한 것이 암호화폐거래소 고팍스였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원화마켓을 폐쇄하면서 존폐 기로에 섰다. 금융당국은 원화마켓을 운영하는 거래소의 은행 실명계좌 발급을 의무화했지만, 은행들은 스타트업에 쉽게 계좌를 내주지 않았다. 가상자산 업종이라는 이유로 벤처기업 인증을 취소당하는 일도 있었다. 이 대표는 “한국에서 블록체인을 한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며 “자금줄이 막혀 폐업 위기에 몰린 적도 여럿 있었다”고 말했다.

원화마켓 폐쇄 이후 임직원이 떠나기 시작했다. 업계 4위를 달리던 거래량도 10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이 대표는 “그땐 ‘한국에서는 고팍스처럼 사업하면 망한다’던 업계 사람들 말이 맞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지방에서 살다시피 한 끝에 전북은행과 계약에 성공했다. 그는 “JB금융지주와 금융당국의 도움이 컸다”고 했다.

다음달 금감원이 고팍스에 대해 검사를 마치고 심사를 마무리하면 고팍스에서 원화로 암호화폐를 살 수 있을 전망이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이 대표는 ‘선비 거래소’라는 별칭을 지키겠다고 했다. “길게 보면 돈 버는 것보다는 신용이 더 중요하잖아요. 투자자와 직원들한테 지킬 수 있는 데까지는 지켜보자는 생각입니다. ” 고팍스는 ‘업계 최고 대우’를 내걸고 전 직군 채용에도 들어갔다.

박진우/이인혁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