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옵틱스는 국내 최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레이저 커팅 장비업체다. 디스플레이 기판을 OLED 화면 크기에 맞게 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단위로 정밀하게 자르고 다듬는 기능을 하는 장비를 만든다. 시장 점유율 60%로 삼성디스플레이가 만드는 갤럭시 스마트폰·탭(S8 울트라)·워치용 화면(OLED패널) 대부분이 이 회사 장비를 거쳐 제조된다.
필옵틱스는 이 같은 경쟁력을 밑천 삼아 지난해 전기차용 2차전지 장비업체로 변신에 성공했다. 한기수 필옵틱스 대표는 “2020년 20%였던 2차전지용 장비사업 매출 비중이 지난해 70%로 확 늘었다”며 “올해도 2차전지 장비가 전체 성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21일 밝혔다. OLED 패널 레이저 커팅 1위
삼성SDI의 엔지니어였던 한 대표는 2008년 필옵틱스를 창업했다. 캐논 니콘 등 일본 기업이 장악한 인쇄회로기판(PCB)·액정표시장치(LCD)용 노광장비를 국산화하겠다는 일념에서다. 그 무렵 디스플레이 시장이 LCD에서 OLED로 넘어갈 조짐을 보이면서 OLED로 노선을 바꿨다. 한 대표는 “당시 OLED 가공 장비가 별로 없었다는 점에 착안해 OLED 패널 레이저 커팅 장비 개발에 사활을 걸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기술적 난제를 만날 때마다 삼성 엔지니어의 도움을 받아 극복하고 2011년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했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도 연구개발(R&D)비를 지원하는 등 힘을 보탰다.
필옵틱스의 기술력은 스마트폰 시장 세계 1위인 삼성전자 제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애플에 공급하는 OLED 패널 물량을 감안하면 아이폰 역시 2대 중 1대가 이 회사 장비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평가다. 삼성과 애플을 넘어 지금은 중국 시장으로 매출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세계 최대 LCD 업체인 중국 BOE를 비롯해 GVO, 티안마 등으로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핵심 장비를 두 곳 이상의 협력사에서 조달하는 편이다. 문제가 생길 경우 전체 생산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그러나 삼성디스플레이는 개발부터 양산까지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 온 필옵틱스의 레이저 커팅 장비만 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2차전지 장비가 ‘효자’디스플레이는 전방산업 영향을 많이 받는다. 대기업이 신규 투자해야 장비 수요가 생기기 때문이다. 필옵틱스가 전기차 2차전지 장비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워온 이유다. 회사 전체 매출이 2020년 1900억원에서 지난해 2300억원으로 21% 늘어난 데 일등공신이 2차전지 장비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장비는 2018년 삼성SDI와 공동 개발한 ‘레이저 스태킹 장비’다. 양극재와 음극재 사이에 분리막을 지그재그로 쌓아 올리는 기능을 한다. 2차전지의 에너지 밀도를 올리고 제조 단가를 크게 낮춰준다는 평가다. BMW 등 전기차에 장착되는 삼성SDI 배터리는 대부분 이 장비를 거쳐 만들어진다. 한 대표는 “유럽에서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늘어나면서 삼성SDI가 헝가리공장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어 올해 실적도 크게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는 이 회사의 올해 매출이 작년 대비 50%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필옵틱스는 새 먹거리로 반도체 장비도 육성하고 있다. 반도체를 수직으로 쌓을 때 필요한 레이저 장비, 별도의 마스크(가림판) 없이 기판에 직접 회로를 그려 넣는 다이렉트이미징(DI) 노광기 등이 그것이다. 굴지의 반도체업체에 연내 공급될 전망이다. 한 대표는 “장차 반도체 매출 비중을 40%로 끌어올릴 것”이라며 “2025년 매출 1조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