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서방의 제재에 대비해 수년 전부터 추진해온 ‘자급자족 경제’ 전략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4년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병합하면서 서방의 각종 제재를 경험한 이후 진행해온 수입 대체 정책인 ‘러시아 요새화(Fortress Russia)’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고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정책은 러시아에서 생산한 제품으로 외국 수입 상품을 대체하는 것이다. 당시 경제학자들은 이 발상이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제재를 극복하는 차원에서 정책을 밀어붙였다.
러시아는 2015~2020년 세출예산의 1.4%인 2조9000억루블(약 36조원)을 러시아 요새화에 투입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국제사회의 제재가 이어지자 주요 부품을 수입에 의존해온 러시아의 국민차 ‘라다’ 생산이 중단되는 등 산업 전반에 타격이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가 자체 개발 항공기로 홍보해온 ‘수호이 슈퍼제트 100’도 부품 절반이 외국산이다. 반도체 컴퓨터 레이저 센서 등 첨단기술 제품을 러시아가 조달할 길도 최근 제재로 차단된 상태다.
야니스 클루게 독일국제안보연구원 연구원은 “러시아 경제는 첨단제품을 자급자족하기엔 작기 때문에 러시아 요새화는 애초부터 비현실적인 야망이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에너지산업도 서방 의존도가 높다. 러시아 유전과 가스전 시설이 노후화했기 때문에 서방의 기술 없이는 채굴이 쉽지 않다.
러시아 요새화는 오히려 일반 국민 삶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외국산 치즈, 햄 등의 수입을 중단하면서 가격이 상승해 러시아 국민은 연간 4450억루블을 더 쓰게 됐다. 2020년 말 러시아 국민의 실질소득은 크림반도 사태 전인 2013년보다 9.3% 줄었다. 러시아 경제성장률도 2014년 이후 세계 평균을 밑돌고 있다.
지난해 설문조사에서 제조업체 81%가 수입품을 대체할 자국산을 찾지 못했다고 답했고 2020년 식품 외 소비재 매출의 75%가 수입품이 차지하는 등 대체 효과도 거의 없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