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글로벌 스토리’ 경영전략에 따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글로벌 스토리란 현지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존중과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사업계획을 바탕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하자는 전략이다.
지난 16일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 미시간주 오번에 있는 SK실트론의 웨이퍼 공장을 찾아 양국의 경제, 기술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타이 대표는 “SK실트론은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양국의 파트너십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SK실트론 웨이퍼 공장에서는 차세대 전력반도체의 핵심 소재인 실리콘 카바이드(SiC·탄화규소) 웨이퍼가 생산되고 있다. SiC웨이퍼는 기존 실리콘(Si) 웨이퍼에 비해 고온 고압에 잘 견디고 전력 손실을 줄여 전기차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SiC 웨이퍼로 만든 반도체를 쓰면 전기차의 충전 속도도 75%나 향상돼 고속 충전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전기차 보급 확대로 세계 SiC웨이퍼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SiC웨이퍼 시장은 매년 두 자릿수 비율로 성장해 2020년 6100만달러(약 741억4500만원)에서 2030년 36억달러(약 4조3700억원)로 증가할 전망이다.
SK실트론이 2020년 듀폰에 4억5000만달러(약 5500억원)를 주고 해당 공장을 인수할 때만 해도 현지 직원은 50명도 되지 않았다. 2년 만에 직원은 160명으로 늘었고 매출도 매년 두 자릿수 비율로 증가하고 있다. SK실트론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생산능력을 크게 확대하기로 했다. 인근인 베이시티에 새 공장을 지어 올 하반기 완공할 계획이다. SK 관계자는 “2019년 듀폰 웨이퍼 사업부가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오자 다수의 글로벌 기업이 치열한 인수전을 벌였다”며 “최태원 회장이 앤드루 리버리스 다우 듀폰 전 회장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빅딜’을 성사시켰다”고 말했다.
SK그룹에 따르면 최 회장은 평소 ‘상대 국가 및 기업과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둔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미국 조지아주를 찾아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의 벽 건립 프로젝트에 100만달러를 기부했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5박6일간 워싱턴DC를 방문해 현지 정·재계 인사와 회동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와 제임스 클라이번 민주당 하원 원내총무 등을 만나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SK의 전략과 미국 내 친환경 사업 비전을 소개했다. 또 공화당의 마샤 블랙번 테네시 주의원, 빌 해거티 상원의원과도 만났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 자회사 SK온은 포드와 합작사 ‘블루오벌SK’를 설립하고 켄터키주와 테네시주에 매년 215만 대의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최 회장은 “SK온이 건설 중인 조지아 공장에 이어 켄터키, 테네시주에도 대규모 배터리 공장이 완공되면 3개 주에서만 1만1000여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최 회장은 워싱턴DC 인근 샐러맨더 리조트에서 열린 국제포럼 ‘트랜스퍼시픽 다이얼로그(TPD: Trans-Pacific Dialogue)’에 참석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우리의 목표는 탄소 저감으로 2030년까지 탄소 2억t을 감축하는 것인데 이는 세계 감축 목표량의 1%에 해당하는 매우 공격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 SK 관계자는 “글로벌 무대에서 탄소중립, 친환경 이슈를 주도하며 한국 기업도 세계 공통된 문제를 해결하는 파트너로 인식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