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요즘 전쟁은 총 아닌 반도체로…기업활동 방해요소 없애겠다"

입력 2022-03-21 17:39
수정 2022-03-22 02:57
“경제 안보 대응을 위한 범정부 회의체에 민간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일자리 모습이 다양해진 만큼 노동 법제가 대폭 개정돼야 합니다.”(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21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만난 경제 6단체장은 규제 혁파와 노동 개혁의 필요성을 한목소리로 건의했다. 윤 당선인은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이 넘도록 경제계의 애로사항을 귀담아들었다. 경제계의 목소리를 들은 윤 당선인은 “요즘 전쟁은 총이 아닌, 반도체가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며 “정부가 해야 할 일도 기업과 경제활동의 방해요소를 제거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일자리 창출 위해 규제 완화를”경제 6단체장들은 규제 개혁, 중대재해처벌법과 노동 관련 법제 개정 등 기업 경영의 걸림돌을 제거해달라고 윤 당선인에게 요청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새로 생겼거나 더욱 강화된 규제가 주를 이뤘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기업이 창의와 혁신의 DNA를 마음껏 발현할 수 있도록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것은 개선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손경식 회장 역시 “규제를 풀면 투자도 일어나고 일자리도 많이 생긴다”며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규제를 적극적으로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일자리 창출을 점검하고 논의하는 모임을 정기적으로 열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손 회장은 ‘노동 개혁’도 당부했다. 경제계는 지금까지 노동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해왔지만, 현 정부에서 노동 개혁은 후순위로 밀렸다. 손 회장은 “일자리 모습이 다양해져 노동 법제가 대폭 개정돼야 한다”며 “우리 노사관계 풍토가 걱정스럽다. 이런 풍토가 국가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권력 집행이 과감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최근 물류비용이 급반등하며 어려워지고 있고 글로벌 공급망도 큰 위협”이라며 “기업의 개별 대응이 어려운 공급망 문제에 각별히 관심을 두고 지원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과의 통상 협력이 더욱 긴밀해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중대재해법도 개정 호소경제계는 중대재해법의 현실화를 입을 모아 건의했다. 중대재해법은 2020년 12월 더불어민주당이 경제계의 반대에도 단독으로 통과시킨 법이다. 허 회장은 “안전이 중요하다”면서도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민관의 협력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경제와 안보가 한 몸이라 생각한다”며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새로운 산업의 발전을 좀 더 과감하고 전략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핵심 원천 기술을 좀 더 만들어야 미래 안보가 훨씬 튼튼해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범정부 회의체에 민간이 참여하게 해주면 정례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진 비공개 회담에서는 대학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발언도 나왔다고 한다. 윤 당선인은 이에 “대학이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해야 하고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며 “대학 교육 제도 개편을 위해 경제계에서 제언해달라”고 요청했다.

윤 당선인은 노동 개혁과 연금 개혁에 대해서는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토론과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참석자들이 ‘부처 이기주의’에 대해 언급하자 윤 당선인은 “공무원의 조직 논리와 보신주의가 문제”라고 했다. 커피 마시며 대화 이어가역대 대통령 당선인이 경제단체를 찾은 것과 달리 윤 당선인은 인수위 사무실에 직접 기업인을 초대했다. 윤 당선인은 “그간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중소기업은 중소기업대로 기업하기 힘드셨겠다는 생각이 안 들 수 없다”며 기업인을 위로했다고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전했다. 윤 당선인은 “(기업이) 해외에 도전하는 것은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나 다름없다. 운동복도 신발도 좋은 것을 신겨 보내야 하는데, 모래주머니 달고 메달 따오라고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며 “새 정부는 상식에 맞춰 (제도를) 바꿔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미현/성상훈/도병욱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