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여성 변호사들이 유리천장에 금을 내주셨죠. 저는 마지막으로 한번 툭 쳐 깨트린 것뿐입니다.”
최근 국내 10대 로펌 중 신입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에 오른 첫 여성 변호사 이영희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50·사법연수원 29기·사진)의 얘기다. 그는 “법조계의 유리천장은 나 혼자만의 능력으로 깬 게 아니다”며 20일 이렇게 말했다. 이 대표는 바른 공채 1기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이 로펌 파트너 변호사 130여 명의 선택을 받아 올해 1월 대표에 취임했다.
이 대표는 1972년 강원 화천의 딸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는 다섯 딸들에게 신문에 난 여성 법조인 기사를 보여주며 ‘여성도 법조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꿈을 심어준 게 아버지였다면, 어머니는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왔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가 홀로 다섯 딸을 키우셨다”며 “어머니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다섯 딸 중 세 명이 법조인의 길을 걷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변호사로서 첫발을 바른에서 뗐다. 2000년 공채 1기로 이 로펌에 입사한 것이다. 1998년 전관 네 명이 설립한 바른이 공채 1기로 두 명의 변호사를 뽑았는데, 이 대표와 문선영 숙명여대 교수였다. 이 대표는 “고(故) 정귀호 전 대법관께서 ‘성별과 상관없이 능력만 보고 뽑자’며 두 명 다 여성 변호사를 뽑았다”고 말했다.
그는 “바른의 가족적인 분위기 덕분에 쑥쑥 성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창업자들이 재판에서 판사의 말 한마디가 어떤 의미인지, 그렇다면 이후 변론기일에 어떤 부분에 더 신경 써야 하는지 하나하나 다 알려주려고 노력했다”며 “그 덕분에 송무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 대표는 여성 변호사들의 강점으로 ‘클라이언트에 대한 공감 능력과 꼼꼼함’을 뽑았다. 그러면서 “능력 있는 여성 변호사를 많이 봐왔지만, 출산이나 양육 문제로 바쁜 대형 로펌을 떠나는 사례들이 너무 아쉬웠다”며 “로펌은 사람이 자산이니만큼 좋은 사람이 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바른은 여성 변호사들이 양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수임료 부담이 없는 파트너 제도’나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제도’ 등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그는 “과거와 같이 친분을 앞세우던 수임 문화가 많이 사라지고, 여성 변호사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점차 마련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여성 변호사 수가 늘어났기 때문에 여성 대표가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정도로 시대가 바뀐 것”이라며 “후배들의 앞길을 막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