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중국 법인에 1조2000억 긴급 수혈

입력 2022-03-20 17:04
수정 2022-03-21 00:29
현대자동차가 중국 시장의 부진을 해결하기 위해 ‘정면 승부’에 나선다. 중국 시장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등 힘을 뺄 것이라는 관측과 반대로 추가 투자에 나서기로 했다. 신형 전기자동차를 앞세워 재도약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中 전기차 시장 잡아라” 현대차와 중국 베이징자동차는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의 자본금을 9억4218만달러(약 1조1400억원) 늘리기로 결정했다고 20일 발표했다. 베이징현대의 지분을 50%씩 보유하고 있는 두 회사는 이번 증자금도 절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양사는 증자금의 절반을 오는 6월까지, 나머지를 12월까지 납입할 예정이다.

현대차와 베이징자동차는 추가 투자금을 전기차 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입할 계획이다. 베이징자동차는 공시를 통해 “이번 증자는 자금 운용 안정성을 도모하고, 자동차산업 전동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전기차로의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시장이다. 지난해 중국에서는 298만9000대의 전기차가 판매됐는데, 이는 전체 승용차 중 15% 수준이다. 2020년 대비 169.1% 증가한 규모다. 세계 전기차 신차 중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팔릴 정도다.

현대차는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심각한 부진을 겪고 있다. 지난해 전기차 판매 대수는 5000대에도 미치지 못했다. 미국 테슬라는 물론 비야디(BYD), 니오, 샤오펑 등 중국 현지 업체에도 크게 밀리고 있다. 전용 플랫폼 전기차가 아닌, 기존 내연기관차를 개조한 전기차를 내세우다 보니 소비자에게 외면받았다는 분석이다.

베이징현대는 향후 전용 플랫폼인 E-GMP를 기반으로 한 전기차를 현지에서 생산해 판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한 현지 전용 전기차도 개발할 계획이다. 이번 증자를 통해 전용 플랫폼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실탄’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5년 만에 3분의 1 토막 난 중국 판매량업계에서는 중국 시장에서의 반등 여부가 현대차의 최대 과제 중 하나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는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 2017년부터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2016년엔 114만2016대의 차량을 팔았지만, 지난해엔 판매량이 36만565대로 떨어졌다. 5년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판매량이 줄어든 셈이다.

주원인은 2017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다. 당시 중국 현지에서 현대차 불매운동이 벌어질 정도로 분위기가 나빠졌다. 현대차가 급변하는 중국 소비자 취향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지적도 많다. 소비자들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선호하고 있는데도 현대차는 오랫동안 세단 모델을 주력으로 내세웠다.

2010년대 초중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가격을 대폭 낮춘 게 독이 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소비자들이 가격이 합리적인 수입차 브랜드가 아닌, 중국 현지 브랜드의 경쟁자로 인식하면서 이미지가 나빠졌다는 설명이다.

현대차는 최근 중국 시장 전략을 완전히 바꿨다. 판매량을 늘리는 것보다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베이징 1공장을 매각한 데 이어 최근 충칭공장 가동을 잠정 중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저가형 모델 대신 미국과 유럽 등 선진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모델을 투입하고,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도 중국에 진출시키기로 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