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잡앤조이=백윤희 매니저] “백수인데 치킨 먹어도 되나요? 돈도 못 버는데.”
실제로 들었던 말이다. 이런 말은 들을 때마다 마른오징어 불에 오그라들듯이 가슴이 찌릿하다. 후다닥 달려가 “진짜 괜찮으니 걱정 그만하고 치킨 먹은 다음에 산책도 다녀오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우선 ‘괜찮다’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나는 백수 생활이 길어지면서 뭐든 다 안 괜찮다고 결론 내릴 때가 많았다.
‘교촌 허니콤보 먹고 싶은데 백수가 한 끼로 2만 원을? 머리 자르고 싶은데 백수가 감히 미용실을? 청바지를 사고 싶은데 백수가 옷을 사? 올리브영 갔더니 3CE 틴트 너무 예쁜데 백수가 무슨 화장품?’ 이런 흐름이었다. 평소 마인드가 ‘가는 데 순서 없다’ 인데도 3개월 이상 백수로 지내면서 저렇게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합리화하고 타협하면서 살긴 했다. 가끔(집에 아무도 없을 때) 치킨도 시켜 먹고, (편의점 택배함으로 주문해 몰래 가져오는 식으로)야금야금 옷도 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자존감 깎아 내려가면서 타협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걸 다 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장담컨대 가끔 한 끼로 2만 원 쓴다고 해도 될 게 안 되진 않았을 거란 말이다.
“지금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으면 2만 원이나 쓰는 거네, 구직지원금으로 통신비랑 교통비 내야 하는데 식비로 2만 원을 쓴다니, 백수 주제에 사치 아닌가, 만약에 내가 한 달에 200만 원 벌면 월급의 1%나 쓰는 거네, 근데 난 월급 받을 회사도 없지, 진짜 무능력하다”
이렇게 걱정의 흐름을 계속 따라가지 말자. 걱정은 삶의 동반자다. 그러니 최대한 짧게 하고 그다음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건 ‘계속’이다. 걱정이 시작되면 한 단계씩 파 내려가지 말고 의식적으로 멈춰야 한다. 부정적 사고를 습관으로 만들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선천적으로 걱정이 과하고 부정적인 사람이다. 오죽하면 대학교 교양 수업 때 걱정을 주제로 과제한 적이 있는데 대충 기억나는 게 걱정하는 일의 90%가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한다(부정확하지만 그냥 믿어보자). 그러니까 ‘계속’이 중요하다. 걱정이 나쁜 게 아니라 계속 걱정하는 게 나쁜 것이다.
소위 말하는 필수 스펙 없이 신입으로 면접 보러 다니던 시절, 자기소개 시간이 되면 ‘프로 백수’라고 재치 있는 척 말했지만 사실은 불안과 우울로 점철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보다 물리적으로든 심적으로든 더 고된 백수의 삶을 보낸, 혹은 사는 중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구성하는 경험과 가치관은 매우 다르므로 어떻게 단언하냐고 생각할 수 있겠다. 내 생각을 관철하려는 것은 아니고 괜찮다는 말을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하고 싶었다. 삶에는 내 걱정에 비해 생각보다 괜찮은 상황이 꽤 많다. 비단 취업과 백수라는 영역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괜찮다는 말을 마음으로 소화했을 때 그 가벼운 느낌을 더 많은 사람이 알길 바랄 뿐이다.
백윤희 씨는 제품, 사람, 문화에 서사 만들어 붙이기를 좋아하는 직장인이다. [2호선 수필집]은 2호선을 타고 출퇴근하며 만나고 느낀 것들의 잔상이다. 그렇다고 2호선을 좋아하지는 않으며 극세사 이불에 누워있는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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