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7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발언하면서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이는 윤 당선인이 '반노동' 후보로 낙인 찍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윤 후보의 발언이 게임업계의 업무 현실에 맞춰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하자는 의미였다는 반박도 나왔지만, 진의와 상관 없이 정치권의 공세는 거셌습니다. 일부 극렬 반대자들은 "대선에서 윤 당선인을 찍은 2030세대 직원들을 (장시간 근로를 시키는 등) 마음껏 굴려주겠다"는 발언까지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청년 챙긴다"더니…인턴에게 주120시간 일시키는 회사이런 공방과 별개로, 실제로 주 100시간을 넘겨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국회에서 일하는 '인턴'들입니다.
지난 14일 국회 재직자들의 익명 게시판인 '대나무숲'에는 더불어민주당 보좌진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대나무숲은 소속이 인증된 보좌진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대선 이후 민주당에 제대로 된 쇄신을 요구하는 이 글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윤석열이 이야기한 주120시간씩(국정감사, 선거 등) 근무하면서 야근수당, 주말 수당 하나 못 받고 지옥고에서 살면서, 연차휴가 한번 제대로 못쓰는 월급 190만원의 인턴들. 당신들은 이런 분들을 한번 살펴보기나 했나? 원래 90만원 받던 인턴들이 190만원이면 생활이 풍족하고 서울에 아파트 한 칸 살 수 있을 것 같나? 연차휴가 하나 제대로 못 쓰는 직원들이 12월에 고작 몇십만원 되는 연차수당 받았다고 '나는 한해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어'라고 자랑스러워 할 것 같나? … 당신들은 최소한 청년 직원들의 노동 환경부터 챙기고 청년들을 챙기는 척이라도 했으면 한다."
국회 보좌진들에게 이런 주장에 대한 사실 확인을 해봤습니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보좌진은 "바쁠 땐 새벽 귀가가 잦은데 택시비마저도 잘 안챙겨 주는 경우가 많아 체감 임금은 더 적을 것"이라며 "이슈가 있을 땐 주 100시간 넘게 일하는 경우가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국민의힘 보좌진의 응답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회에 나가 도움이 되는 경험을 쌓는다는 점에 자발적으로 재밌게 일하는 직원도 있겠지만, '열정페이' 정신이 다른 곳도 아닌 국회에 아직도 남아있다는 점에 자괴감을 느낀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등잔 밑 어두운 국회인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근로기준법 등 근로자를 위한 법을 만진다는 국회지만, 정작 핵심인력인 보좌진들은 고용에 대한 우려와 평판 때문에 육아휴직 등 일반 회사에서라면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마저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하소연도 나왔습니다.
노동자와 소수자의 편을 표방하는 정의당의 의원들조차 최근 잇따라 의원실 내 갑질과 부당해고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만약 대나무숲 게시물의 성토가 사실이라면 인턴 직원의 고용주인 의원들은 최저임금법 위반, 임금체불 혐의로 입건돼야 할 것입니다.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물론 그 최대 피해자는 앞서 언급된 '계약직' 인턴입니다. 비정규직을 없애고 청년을 위한 공약을 논한다더니, 정작 기본적인 근로기준법도 제대로 준수하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국회는 업무 특성 상 어쩔 수 없고, 특별히 바쁜 시기에만 그랬을 뿐"이라고 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업주들의 그런 하소연에는 어떻게 대했는지도 한번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법정 근로시간 초과, 초과 수당 미지급 등을 이유로 국감장에 증인들을 불러들이거나 상대 당의 노동 공약을 지적하기 전에, 자신의 직원들부터 챙겨봐야 하지 않을까요.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딱 맞는 상황입니다.
국회가 위치한 영등포구에서 벌어진 노동관계법 위반을 담당하는 관공서는 서울서부고용노동지청입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