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와 까치를 익살스럽고 친근하게 표현한 작호도(鵲虎圖), 액운을 막는다는 늠름한 수탉 그림 계도(鷄圖), 꽃과 새 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은 화조도(花鳥圖)…. 한국인의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미감을 담은 민화(民畵)는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는 전통 회화 장르다. 하지만 ‘예전에 실용을 목적으로 무명인이 그렸던 그림’이라는 국어사전의 정의는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사전의 설명대로라면 선사시대 바위 그림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도 민화로 분류해야 해서다.
민화 전문가인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민화의 시대》에서 학계의 최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민화에 대한 세간의 여러 오해를 바로잡고 개념을 재정의한다. 예컨대 민화는 백성 민(民)자 때문에 평민이나 천민이 주로 그리고 소비했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하지만 저자는 “기법이나 재료 등을 보면 민화 화가 중 상당수는 중인층”이라며 “그림을 향유하는 사람 중에서도 양반이나 중인층이 많았다”고 분석한다.
민화와 궁중 회화가 서로 확연히 구분되는 장르라는 통념도 사실과 다르다. 19세기 말 그림 그리는 일을 담당하던 관청인 도화서(圖畵署)가 폐지되면서 일자리를 잃은 화원(畵員)들이 민간 시장에서 그림을 그려 팔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민간 시장의 주류였던 민화와 궁중 회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많은 공통점을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민화의 특성 10여 가지를 분석한 뒤 ‘19세기에서 20세기 초 민간 화가들이 길상과 벽사의 내용을 담아 생활공간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라는 정의를 도출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특성은 자유분방한 화풍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조선시대 미술 시장의 형성과 발달을 서술한 대목도 흥미롭다. 18세기 후반 종로와 광통교에 처음으로 그림을 파는 가게가 등장했다. 19세기 중엽 상품 경제의 발달로 신흥 부유층이 등장하면서 집에 걸 그림을 찾는 수요도 커졌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화상(商)이 생겨나고 미술 시장이 성장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