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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야, 워런?" 미국 투자매체 배런즈가 닷컴버블 시절(1999년 12월) 보도한 기사의 제목이다. 당시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벅셔해서웨이는 인터넷 경제에 열광하던 세상과 동떨어져 있었고 사람들은 워런도 결국 신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노인일 뿐이라고 폄하했다. 하지만 누가 알몸으로 수영하고 있는지는 파도가 빠져나가야 알 수 있는 법. 해당 기사 보도 이후 3년 간 S&P500지수는 37% 하락했지만 벅셔해서웨이의 주가는 36% 올랐다.
그 후 23년이 지났다. 코로나19 이후 유동성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벅셔해서웨이는 다시 한 번 저력을 보이고 있다. 주가꿈비율(PDR)이란 허무맹랑한 얘기가 나올 때도 기업의 내재가치에만 집중한 덕이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벅셔해서웨이(A주)는 전거래일 대비 1.18% 오른 50만4036달러에 장을 마쳤다. 50만 달러선에서 장을 마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올 들어 S&P500지수가 8.57% 떨어질때 벅셔해서웨이는 11.84% 올랐다. 시가총액 10위 종목의 덩치가 미국 중앙은행(Fed)의 긴축을 앞두고 잇따라 축소되고 있을 때 벅셔해서웨이만이 시총이 부풀었다. 현재 전세계 7위(7381억달러)를 기록 중이다. ○해자가 있는 기업에 투자하라반 세기 동안 변하지 않는 버핏의 투자철학이 빛을 발했다. 가장 중요한 건 강력한 브랜드를 갖고 있는 회사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버핏은 1970년대 초콜릿판매업체 시즈캔디에 투자하면서 벅셔해서웨이를 지금의 회사로 키워냈다. 1979년 비즈니스위크가 '주식의 죽음'이란 제목의 특집기사를 썼을 정도로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신음하던 때였다. 시즈캔디는 매년 가격을 올렸지만 브랜드가치가 강력했기 때문에 꾸준히 소비됐다. 벅셔해서웨이의 주가도 같이 올랐다.
지금은 애플이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 벅셔해서웨이의 포트폴리오의 46%(작년 말 기준)를 차지하는 애플은 독보적 브랜드가치가 있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아무리 비싼 스마트폰을 내도 충성도 높은 소비자들이 꾸준히 소비해준다. 애플은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병목현상에도 불구 지난해 10~12월 매출이 전년 대비 11% 증가한 1239억달러를 기록했다. 주가 급등에 한 때 시가총액이 3조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주식이든 양말이든 질 좋은 물건을 싸게 사라일본의 5대상사 베팅은 버핏의 가치투자 성향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다. 2020년 8월 벅셔해서웨이는 일본의 5대 상사 지분을 5%씩 매수했다. 당시 각 상사의 주당순자산비율(PBR)은 1배를 겨우 넘긴 이토추상사를 제외하면 모두 1배 미만이었다. 라면부터 미사일까지 다루는 상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복잡한 탓에 오래도록 저평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로 원자재를 다루는 상사는 인플레이션이 오면 가장 크게 수혜를 볼 종목이었다. 실제 이토추상사는 17일 전거래일 대비 1.51% 오른 3977엔에 장을 마치면서 사상최고가를 경신하는 등 나홀로 독야청정이다.
엔화 표시 채권을 발행해 투자자금을 조달했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벅셔해서웨이는 2019년 이후 3년 연속 엔화 표시 채권을 발행했는데 총 7855억엔 규모였다. 일본은 전세계에서 특히 금리가 낮은 국가로, 엔화 표시 채권을 이용하면 그만큼 싸게 투자할 수 있다. 벅셔해서웨이의 신용등급(AA)은 도요타자동차(A+)보다 높아 2019년 발행한 10년채 표면이율은 0.44%에 불과했다. 앞으로 엔화가치가 더 떨어진다면 벅셔해서웨이는 만기상환 때 적은 달러를 바꾸고도 채권을 상환할 수 있다. 일본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경제둔화가 우려되는 국가로 장기적 엔화가치 하락을 예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편 벅셔해서웨이의 주주총회는 오는 4월 30일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개최된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됐지만, 이번엔 대면으로 진행된다. '자본가들의 우드스탁(락페스티벌)'이라고 불리는 벅셔해서웨이의 주총에서 버핏이 또 어떤 혜안을 나눠줄 수 있을지 시장의 기대가 높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