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에서 이번 대선 패배를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로 정리하려는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 이전 지도부와 ‘이재명계’ 의원들이 특히 그렇다. 압도적인 정권교체 여론 속에서도 역대 최소인 0.7%포인트(약 24만 표) 차로 졌으니 ‘이만하면 선방했다’는 것이다. 행정부와 국회, 지방권력까지 모두 틀어쥔 ‘슈퍼 여당’이 어쩌다 자신들이 ‘탄핵 세력’이라고 얕잡아 보는 국민의힘에 5년 만에 정권을 내줬는지에 대한 통렬한 반성은 잘 안 보인다.
오히려 일각에선 자성의 목소리를 ‘배신’으로 몰아붙이고 패배 책임을 정의당 등 남 탓으로 돌리는 구태마저 반복되고 있다. 민주당 5선 중진 이상민 의원이 지난 14일 “졌지만 잘 싸웠다는 얘기는 허언성세”라며 “내로남불, 위선, 오만, 독선 때문에 정권심판 여론이 깊고 넓게 퍼져 있었다”고 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김우영 선대위 대변인은 곧바로 “잊을 만하면 나타나 총구를 거꾸로 돌려 쏘는 작은 배신 반복자”라며 “이상민 축출하라”고 공격했다. 대선 끝나니 슬슬 딴소리김용민 의원은 “국민은 검찰개혁 하라고 민주당에 힘을 몰아줬는데 하지 않고 있다가 (지난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이어 대선까지) 두 번의 큰 선거에서 연패했다”며 ‘검찰개혁 미흡’을 결정적 패인으로 꼽았다.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의당 지지층이 강하게 반발해온 ‘비례대표 위성정당 창당’(2020년 총선)을 “제1야당의 잘못된 정치 행태에 대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국민의힘 탓’으로 돌렸다. 대선 결과를 중도층이 아니라 강성 지지층의 시각으로 복기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국민 대부분은 이번 대선 결과를 국민의힘의 승리라기보다 민주당의 패배로 본다. 국민의힘이 잘해서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독선과 오만, 내로남불을 심판하고 견제하기 위해 정권교체를 택한 국민이 많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막무가내식 부동산 정책으로 집값을 천정부지로 올렸고, 집 한두 채 가진 국민들까지 ‘투기꾼’ 취급하며 세금을 가파르게 올리고 대출을 옥죄었다.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등 검증되지 않은 정책과 과속 정책으로 국민을 피곤하게 만들었고 조국, 박원순, 윤미향 등 ‘내 편’의 잘못은 감싸기에 급급했으며 비판 세력은 ‘토착왜구’나 ‘적폐’로 몰곤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5년 전 취임사에서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지만 빈말이 됐다. 0.7%p만큼만 혁신할 건가이런 실정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결과가 대선 내내 압도적 정권교체 여론으로 나타났고 결국 1년 전만 해도 마땅한 대선후보 하나 없던 야권에 정권을 넘겨주게 됐다. 민주당도 대선 땐 중도층을 잡기 위해 이런 비판에 고개를 숙였다. 이재명 후보는 가는 곳마다 반성과 변화를 외쳤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잘못을 고치겠다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도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용퇴’, 윤미향·이상직 의원 제명, 동일 지역구 3연임 초과 금지 등 쇄신책을 쏟아냈다. 민주당이 그나마 0.7%포인트 차로 진 건 반성하고 변화하려는 노력이 적잖은 국민에게 ‘어필’한 덕분이다.
그랬던 민주당이 대선이 끝나자마자 ‘졌잘싸’를 외치며 반성 대신 대선 결과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려는 유혹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민주당이 0.7%p 격차에 안주하며 0.7%p만큼만 혁신하려고 하면 (…) 6월 지방선거와 내년 4월 총선 모두 ‘무난하게’ 패배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이 새겨들어야 할 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