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 선임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고 원칙도 모호합니다. 다른 투자자들까지 혼란스럽게 하네요.”
16일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 앞서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공단의 ‘반대표’ 행사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국민연금은 이날 경계현 DS부문장·박학규 DX부문 경영지원실장의 사내이사 선임, 김한조 전 하나금융공익재단 이사장·김종훈 키스위모바일 회장의 감사위원 재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김 전 이사장의 사외이사 선임에도 반대했다. 국민연금은 지난 11일 공시를 통해 “기업가치의 훼손 내지 주주권익의 침해 이력이 있거나 이에 대한 감시 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짧게 반대 이유를 밝혔다.
주총에서 이들의 이사 선임 안건은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과됐다. 애초 국민연금의 삼성전자 지분율(8.53%)이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21.16%) 등 우호 지분 비중보다 훨씬 낮아 안건이 부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투자업계에선 올해 주주총회 시즌 동안 국민연금이 이처럼 ‘보여주기식’으로 반대의결권을 행사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의결권 행사 기준이 모호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국민연금은 이날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진 김종훈 회장에 대해 지난해엔 찬성표를 행사했다.
의결권 자문사들의 의견과 반대 행보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번 삼성전자의 이사 선임 안건 역시 일부 자문사를 제외한 주요 의결권 자문사가 찬성을 권고했다. “국민연금이 공시 이외에는 회사에 명확한 반대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의결권을 가진 상장사에 총 549건의 반대표를 행사했다. 이 중 주총에서 실제로 안건이 부결된 경우는 10건에 불과했다. 비율로 따지면 1.8%에 그친다. 최근 5년으로 범위를 넓혀봐도 부결된 비율은 2.4%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국민연금이 명확한 기준 없이 기계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해 자꾸 무의미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며 “기업 주가가 떨어지면 주주와 국민연금 모두 손해인 만큼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