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작은 청와대 요체는 인사권 위임…인사수석도 없애는 게 맞다"

입력 2022-03-16 17:33
수정 2022-03-17 01:14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동안 언론 접촉을 끊고 지냈다. 나라 돌아가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은 데다 얘기해봤자 소용없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윤 전 장관은 ‘미스터 쓴소리’답게 곧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작은 정부’를 적극 지지한다면서도 윤 당선인의 노동공약 등은 방향이 잘못돼 있다고 분명히 지적했다. 현 정부에서 뒤틀린 모든 정책을 되돌리되, 표를 위해 던진 공약은 인수위원회 단계에서 과감하게 잘라낼 것을 주문했다. 기득권 반대를 넘어야 할 개혁 과제는 대통령의 결단 없인 불가능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지금 위기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데 이런 현실을 새 정부가 정확히 직시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도 했다. 윤 전 장관을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윤(尹)연구소에서 만났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 요인은 무엇입니까.

“대내적, 대외적 균형이 모두 무너지고 있습니다. 우선 대외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3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에서 전쟁까지 터지면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있죠. 한국은 자원 빈국이기 때문에 타격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환율이 치솟고 있어요. 새 정부는 대외 변수에 어떻게 균형을 잃지 않을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다이내믹스(dynamics) 코리아’의 모습이 실종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기업인은 기업을 경영할 의욕이 나지 않고, 근로자는 땀 흘려 일하려는 노동의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요.

“정부와 정치권의 잘못으로 국민의식이 추락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5년간 정부는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평등하게 나눠주겠다며 국민이 정부에 의존하게 만들었어요. 또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대장동 사건 등 대형 스캔들이 터지면서 국민은 허탈감에 빠졌죠.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 이 국민의식을 다시 되살리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정권교체가 이뤄진 배경을 무엇이라 봅니까.

“지난 5년간 모든 분야가 쇠락했지만 경제가 쇠퇴한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특히 저성장으로 인한 일자리 문제는 심각합니다. 성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일자리를 비롯해 가장 많은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더구나 분배, 불평등, 양극화 문제는 성장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봅시다. 우리 정부가 지켜야 할 성장의 3원칙이 있는데,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 세계 평균보다 높아야 한다는 것, 전년 대비 성장하는 것이죠. 이 세 가지 모두 문재인 정부는 지키지 못했습니다.”

▷현 정부의 정책 중 반드시 폐기해야 하는 정책은 무엇입니까.

“탈(脫)원전 정책은 바로 폐기해야 합니다.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에서 원자력 발전은 꼭 필요합니다. 지난 5년간 탈원전 정책으로 사라진 그 우수한 인력, 기술들이 너무 아깝습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당연히 폐지해야 합니다.”

▷시급히 추진해야 하는 개혁과제는 무엇입니까.

“우선 연금개혁이 필요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연금개혁 시늉만 하다 말았습니다. 고갈되는 연금을 그대로 두는 것은 정부의 직무를 방기한 셈입니다. 연금개혁을 하지 않으면 결국 나중에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데, 아마 정부 재정이 파탄날 것입니다. 의료개혁도 중요한데 주요국 가운데 원격의료를 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겁니다. 의료 분야 산업화도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제일 우수한 인재가 가는 분야가 의약업계입니다. 의료 분야에 대한 민간 투자를 자유롭게 허용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병원이 최신 의료기기를 도입하고 의료 서비스를 선진화할 수 있습니다.”

▷개혁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이 정부에선 중단됐지만 지난 20년간 줄곧 추진해오던 의료개혁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실패했습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기득권 장벽입니다. 의사, 약사들이 똘똘 뭉쳐 자기네 출신을 국회로 밀어넣고 정치권을 움직여 입법을 치밀하게 막았지 않았습니까. 결국 관건은 집권자의 의지입니다. 여론 눈치를 보지 않고 국가 장래를 보고 밀어붙이는 결단력 없이는 아무런 개혁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정치 포퓰리즘의 벽을 넘는 것도 만만치 않을 텐데요.

“투자개방형 병원 도입을 놓고 정치인 장관들과 싸우다 맨날 이런 소리를 듣곤 했어요. ‘경제적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정무적 판단도 좀 하라고’ 말이죠. 그래서 나는 이렇게 쏘아붙였죠. ‘다들 정무적 판단을 하는 사람만 있으니까 나라도 경제적 판단을 해야 되겠다’라고요.”

▷새 정부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출범하게 돼 어떤 개혁이든 쉽지 않을 텐데, 해법이 있을까요.

“여소야대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윤 당선인이 더불어민주당과 공동정부 내지 연합정부 형태로 협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내각 일부를 민주당에 내주는 방식이죠.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방법이지만, 문제는 새 정부의 정체성을 지키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무엇입니까.

“정면돌파하는 방법입니다. 현재 정부가 탄생한 정체성을 그대로 갖고 국회를 압박하되, 뜻대로 되지 않으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식이죠. 민주당이 여소야대 상황을 활용해 법안을 통과시키면 대통령 권한으로 과감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습니다. 민주당도 국민 다수가 동의하는 법안까지 반대하는 식으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지는 못할 것입니다.”

▷인수위가 곧 출범합니다.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대선 과정에서 표만 보고 던진 공약을 구조조정하는 것입니다. 지켜야 할 공약, 수정해야 할 공약, 버려야 할 공약을 인수위 단계에서 가지치기해 버려야 할 공약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어떤 것이 버려야 할 공약입니까.

“노동이사제 공약에 실망했습니다. 후보자 시절 윤 당선인이 TV 토론회에 나와서 ‘우선 한번 해보자’며 노동이사제를 옹호했는데, 한국과 같이 노사 대립이 심한 국가에서 노동이사제는 한번 도입되면 돌이키기 어렵습니다. 또 1~2년 후엔 민간으로의 확대 압력이 높아질 것입니다. 특히 예전 노조추천 이사제와 달리 노동이사제는 사실상 노조원이 이사회에 참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기업경쟁력 저하가 대단히 우려됩니다.”

▷코로나 대응을 위한 정부의 재정지원 방식에 문제는 없나요.

“코로나 극복을 위해 재정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처럼 자원이 없는 나라는 재정건전성이 대외 신인도를 유지하는 핵심 변수라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경각심을 갖고 관리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부채는 늘어납니다. 일본도 불과 10~20년 만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두 자릿수에서 200%까지 올랐습니다.”

▷장관 재직 당시에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대규모 추경을 편성하곤 했습니다. 당시엔 어떤 원칙을 중시했습니까.

“재정 확대가 필요하다면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주는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당시엔 자활의지를 북돋우는 재정 지원으로 가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거기에 맞게 재정을 집행했습니다. 지금처럼 모두에게 나눠주는 식으로는 재정만 낭비하고, 효과는 못 보고, 부작용만 키우는 결과를 낳기 십상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관료사회가 무기력을 넘어 무력화됐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공무원 사회가 완전히 초토화됐습니다. 정치가 행정을 완전히 덮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공무원의 책임도 있습니다. 부당한 지시에 저항하지 않고 소명의식을 내려놓은 공무원이 많았죠. 정치와 행정이 충돌하면 항상 선출된 정치 권력이 이겨요. 그래서 선출권력이면서 공무원인 대통령이 중심을 잘 잡아줘야 합니다. 부총리가 추경 확대에 반대하니까 정치권이 ‘해임해야 한다’고 압박하는 일까지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이럴 때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이 관료를 지켜줘야 합니다.”

▷윤석열 정부는 ‘작은 청와대’를 표방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청와대 역할을 제한해야 합니다. 특히 저는 인사수석실을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사수석실이 모든 인사를 좌우하려 하니까 각 부처 장관들이 책임감 있게 인사권을 행사할 수가 없습니다. 인사는 언제나 업무와 연관지어져야 하는데, 인사권이 없는 장관이 어떻게 일을 잘할 수 있나요. 제가 노무현 정부 때 금융감독위원장을 맡아 인사 좀 하려 했더니 당시 청와대 인사수석 J씨가 다 장악하고 있는 거예요. 청와대에 들어가 ‘인사수석 어딨냐, 당장 나오라’고 고함치며 싸웠습니다.”

▷대통령이 인사권을 내려놓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요.

“역대 모든 정부가 청와대 기능을 축소하겠다고 공언하면서도 인사권은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고 생색 내고 싶어했습니다. 왜냐면 오랫동안 정치를 하면서, 또 선거를 치르면서 챙겨줘야 할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죠. 윤 당선인은 정치적 빚이 없으니 이전 정부보다는 기대가 됩니다.”

▷청와대와 내각 간 바람직한 관계는 어떠해야 한다고 봅니까.

“정책을 청와대가 발표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갑니다. 제가 기재부 장관을 할 때만 하더라도 청와대 비서관이 정책을 먼저 발표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지금 내각 권한이 약해졌단 뜻이겠죠. 윤 당선인이 작은 청와대를 지향한다면 각 부처의 애로를 해소해주고 조정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합니다.”

▷새 정부는 어떤 사람을 장관으로 앉혀야 합니까.

“5년이란 기간은 새로 경험을 쌓아서 지휘권을 행사하기에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미국은 교수 출신을 쓸 경우 중간 국장급으로 먼저 기용합니다. 그런 다음 학교로 다시 돌아갔다가 나중에 다시 장차관으로 불러들이죠.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겁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공무원 출신만 쓰라는 것은 아닙니다. 경험을 충분히 해본 전문가를 기용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 정부가 경험 없는 아마추어를 기용했다가 실패한 것 아닙니까.”

정리=정의진 기자

■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1946년 경남 마산 출생
△서울고, 서울대 법학과 졸업
△10회 행정고시 합격(1971년)
△재무부 금융실명거래실시 준비단장(1989~1990년)
△증권국장, 금융국장(1991~1995년)
△세제실장(1996년)
△금융정책실장(1997년)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1999~2003년)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2004~2007년)
△기획재정부 장관(2009년 2월~2011년 6월)
△윤(尹)경제연구소장(2011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