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소통 위해 靑 옮긴다는데…경호·교통·비용 등 난제 수두룩

입력 2022-03-15 17:45
수정 2022-03-23 15:35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때 청와대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이전하겠다고 공약했지만 대선이 끝난 지 1주일도 안 돼 이 같은 계획이 틀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경호, 교통 등의 문제로 정부서울청사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기가 어렵다는 현실론이 윤 당선인 직속 청와대개혁 태스크포스(TF)에서 나오면서다. 대신 서울 용산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윤 당선인은 당초 ‘대통령실 광화문 이전’ 이유로 ‘국민과 소통’ 및 ‘제왕적 대통령제의 잔재 청산’을 내걸었다. 하지만 이를 위한 방법이 과연 청와대라는 물리적 공간을 광화문 등으로 이전하는 것이냐에 대해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광화문 접고, 용산으로 트나15일 ‘용산 집무실’이 급부상한 것은 광화문 집무실로 검토된 정부서울청사의 규모와 경호, 교통 문제 등이 해소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당초 광화문 집무실이 검토되면서 관저로는 삼청동 총리공관이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정부서울청사는 인근 고층 건물로 둘러싸여 경호에 취약하다. 대통령이 집무실로 출근하는 동안 교통 통제가 불가피해 시민들이 불편을 겪을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정부서울청사 옆 외교부 청사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청와대가 외교부 청사로 이전하면 외교부는 근처 민간 건물을 임차해야 한다.

이에 따라 ‘플랜B’로 떠오른 장소가 한남동 국방부 청사다. 정부서울청사 등 광화문 청사와 비교했을 때 주변 고층 건물이 없어 경호 우려가 덜하다는 게 장점으로 거론된다. 국방부 청사와 연결된 지하벙커를 유사시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이점도 함께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개혁 TF를 총괄하는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실제 후보지를 둘러본 결과, 실무진은 용산이 더 적합하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왜 ‘脫청와대’ 꿈꾸나?청와대는 ‘구중궁궐’ ‘은둔의 요새’로 불리며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여겨져 왔다. 본관 영빈관 관저 춘추관 등 지금의 청와대 구조가 완성된 것은 노태우 정부 때다. 실제 내부는 대통령과 참모 간 소통보다 대통령의 권위가 강조되는 구조다. 예컨대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과 대통령 비서진이 근무하는 여민관의 거리는 500m에 달한다. 걸어서 20분, 차량을 이용해야만 5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세월호 사태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이 논란이 되면서 청와대 구조의 폐쇄성도 도마에 올랐다. 이런 이유로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당시 청와대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이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당선 뒤 실무 검토 과정에서 경호 문제 등을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대신 기존에 청와대 본관에만 있던 대통령 집무실을 비서진이 근무하는 여민관에도 추가로 설치했다.

윤 당선인 역시 주변 사람에게 청와대에 대해 “왕조시대 궁궐의 축소판”이라고 지적하며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방식의 국정 운영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중요한 건 소통 의지하지만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이 분단된 만큼 ‘극단적인 안보 위기 상황’을 반드시 가정해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현재 대통령 집무실 후보로 거론되는 국방부와 대통령 관저로 쓰일 육군참모총장 공관 사이의 거리는 4㎞에 이른다. 이는 청와대 내 본관과 관저 간 거리(200m)의 20배에 달한다. 현재 국방부 장관은 한남동 공관에서 출퇴근할 때 이태원을 지나는 일반도로를 이용한다. ‘용산 시대’가 열린다면 대통령의 이동 상황도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붕 전 대통령 경호실 경호부장은 “새벽 2시에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전쟁이 난다면 대통령이 관저에서 국가위기관리상황실(지하벙커)로 바로 이동해야 하는데 청와대에는 관저에서부터 본관까지 음폐·차폐 시설이 마련돼 있다”며 “청와대 관저를 버리는 것은 국가 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질 대통령으로서 직무유기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또 “대통령실을 외부에 마련할 경우 보안, 통신 시스템 등 새로 갖춰야 할 것이 많다”며 “국가 예산도 굉장히 많이 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거 청와대에서 근무한 한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집권 말기로 갈수록 국가원수에만 머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며 “(청와대 이전 여부를 떠나)행정부 수반으로서 비서와 다름 없는 장관을 직접 상대하고 진두지휘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집무실 이전으로 좀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는 있어도, 제왕적 대통령제가 당장 없어지는 건 아니다”며 “결국 중요한 건 대통령의 소통 의지”라고 조언했다.

조미현/성상훈/송영찬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