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관가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정권 교체기에 단행됐던 보복의 정치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탈원전·주 52시간제 확산 등 문재인 정부의 주요 공약을 주도했던 공무원들이 느끼는 압박도 커지는 분위기다.
15일 대전지검에서 진행될 예정이던 월성원전 수사 관련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3명에 대한 공판은 연기됐다. 피고인 중 한 명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아서다. 대전지검은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사건의 수사 대상자 중 7명을 기소한 상태다.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등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업무방해·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산업부 공무원 3명은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를 위한 문서들을 삭제한 혐의로 기소됐다.
산업부 공무원 3명은 모두 현직으로 복귀한 채 재판을 앞두고 있다. 관가에선 실무자까지 처벌해 공무원직을 박탈하는 것은 과하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한 관료는 “(산업부 공무원들이) 다소 무리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실무자까지 처벌하는 것은 공무원 조직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도 이번 수사에 주목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정치에 입문하면서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에 대해 음으로 양으로 굉장한 압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총장을 그만둔 이유도 월성원전 수사와 관련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속도를 내지 못하던 월성원전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검찰이 재판 과정에서 제출한 증거 목록에서 청와대에 보고됐던 기록이 다수 나오면서 수사 대상이 백 전 장관보다 윗선으로 향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경우 ‘정치보복’ 논란으로 전선이 확대될 수 있는 만큼 윤 당선인 측도 말을 아끼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적폐청산 정치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월성원전 사건은 사법부 판단을 따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정책인 주 52시간제 확산,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주도적으로 맡았던 고용노동부 국·실장들도 대선 이후부터 불똥이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과거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노동계 인사를 중심으로 한 적폐청산위원회인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를 꾸렸다. 위원회는 이전 정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고위직 공무원 중 상당수를 반노동 인사로 낙인찍었다. 이 중 일부는 고용부를 떠나거나 한직으로 밀려났고, 기소돼 재판을 받기도 했다. 공교롭게 당시 적폐로 몰린 인사 중 일부는 조직 중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 후보 물망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부 출신 인사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이 조직에 남긴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다”며 “이 같은 실패가 반복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지훈/곽용희/김진성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