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우산 의전'에 대해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2-03-15 09:00
수정 2022-03-15 09:13

지난 13일 오후 2시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직접 인수위원회 인선 내용을 발표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 도착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 했던가. 온 국민의 시선이 그에게 쏠려 있었다. 반가운 비가 추적거리는 날씨였다. 윤 당선인이 차에서 내리자 누군가 우산을 펴 받쳐줬다. 당사 입구까지 걸어서 불과 몇발짝. 윤 당선인은 우산 의전을 받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건물로 들어섰다.

그걸 지켜본 지인이 안타깝게 말했다. "저런 짧은 거리면 당선인이 직접 우산을 쓰고 가거나 그냥 비를 맞고 가도 좋을 텐데요. '오랜만에 비가 시원하게 오네요'라는 멘트를 쳐도 좋고."

현직 대통령에 준하는 '갑호' 경호를 받는 대통령 당선인에게 '우산 의전'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그 우산에 경호를 위한 특수 장치가 있어 의전이 불가피했을 지도 모른다. 또 우산을 직접 받든, 누가 받쳐주든 그게 무슨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쌓여 그 결과로 누적되는 것이다. 윤 당선인이 지난 9일 20대 대선 투표에서 60% 달하는 정권교체 여론에도 불구, 불과 0.73%포인트(24만7077표)차로 신승(辛勝)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기자는 거기엔 윤 당선인의 이미지가 적잖게 작용한다고 본다. 특히 이대녀(20대 여성)사이에서 윤 당선인의 이미지는 '최악'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럴만도 하다. 당선인은 대한민국 어느 조직보다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며, 권력 지향적인 검찰 조직의 수장 출신이다. 외모도 가부장적이고(외모 폄하 발언이 아니라 대체로 그런 평가가 있음을 전달하는 것임을 양해 바람), 평소 발언도 위압적이고, 마초적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여기에 쩍벌남 행태(지하철, 야구운동장에서 다리를 있는대로 한껏 벌려 앉음)와 민폐남 사진(열차에서 신발신은 다리를 맞은 편 자리에 올려놓음),개사과 발언,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등도 이런 이미지를 만드는데 한 몫한 게 사실이다.

그런 윤 당선인의 지지율이 20대녀 사이에서 가장 높게 올라갔을 때가 있다. 그가 지난 1월 자택에서 연예인들을 불러 백종원급 '칼각' 계란말이를 만들던 모습이 방송을 통해 공개됐던 때와 같은 달 김건희 여사와 한 인터넷 언론사 사진 기사와의 통화 내용이 전격 공개된 때였다. 김 여사는 통화에서 "난 (집에서 밥은) 아예 안 하고, 우리 남편이 다 해"라고 말했다. 알려진 것과 달리, 윤 당선인의 가정적인 모습에 20대녀들이 호감을 느낀 때가 바로 이 장면이다. 기자의 딸과 아내도 "어떻게 저런 계란말이를 만들 수 있지" "저건 한 두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라며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같은 남성들을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 같았던, 누구보다 가부장적 이미지의 윤 당선인이 갑자기 뭇 남성들의 '공적'(公敵)이 됐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왔던 때다.

당내 내홍과 끝없는 실언으로 여당 후보와의 지지율이 10% 포인트 이상 벌어지던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한 게 이 때쯤으로 기억된다. 마침 이준석 대표 등과의 당내 갈등 상황도 마무리됐다.

결과적으로 윤 당선인은 역대 어느 보수정당보다 20대 유권자들로부터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20대 여성층(33.8%)에서는 경쟁자인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후보(58.0%)의 절반 수준에 그치는 결과에 만족해야 했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광고 카피중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게 있었다. 윤 당선인이 공정과 상식의 나라를 만들겠다며 본격적인 집권 준비에 나서고 있다. 소통을 강화한다며 예정에 없던 18분짜리 기자회견도 가졌다. 청와대도 슬림화하고, 상대당에서 국무총리도 모신다고 한다. 다 좋다. 그러나 좋은 리더가 되려면 우선 국민들의 마음부터 사는게 순서다.

윤 당선인은 지난해 강성국 법무부 차관의 과잉 우산 의전 사건이 벌어지자, 행사장에서 비를 맞거나 직접 우산을 들고 다녔다.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큰 그림도 그려야 하지만, 세심한 노력도 함께 필요하다. 적어도 '대통령되니 사람이 달라졌다'는 소리를 들어서는 곤란하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